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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성공 수기
 
제    목  국제공무원 남영숙 OECD 경제전문관 수기
작성자 최수진 님께서  작성했습니다. 조회 184
 
국제공무원 / 남영숙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스탠포드대학 박사(국제개발학, 국제교육정책 전공)

국제노동기구(ILO) 근무

경제협력기구(OECD) 경제전문관

나의 직업은 국제공무원이다. 현재 나는 파리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경제전문관으로 일하고 있고 그 이전에는 제네바에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근무했었다.

국제공무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듯, 나도 처음부터 이 직업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거나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더욱이 나는 지금처럼 배낭여행이 흔하지 않던 때에 대학을 다닌 세대여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외국이라고는 나가본 적이 없고, 대학 재학시절에도 외국 원서라고는 주로 일어판을 읽었을 정도로 상당히 비국제적으로 자란 편이라,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국제공무원의 프로필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나의 일이 내가 이전부터 갖고 있던 사회문제의식과 관심 그리고 이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보면 나의 직업 선택은 우연만은 아닌 셈이다. 직업이란 결국 개인의 지적, 감성적 관심사의 귀결인 경우가 많을 터이니까.

뒤돌아보면, 내가 국제공무원이란 직업을 선택한 것은 이 직업이 나 개인에게 있어서 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폭 넓은 사고를 가능하게 해 주는 동시에,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세상을 개선하는 데 현실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믿음은 현재도 변함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

사회문제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미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싹텄던 것 같다. 부모님들과 두 살 위인 언니가 모두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한 가족 분위기도 작용했었고, 무언가 세상이 무척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감을 잡기 시작한 것과도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문학작품 읽기를 즐겨하고 끄적거리기도 많이 해봤지만, 위대한 작품을 쓸만한 글재주는 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작가의 꿈은 포기했다. 왠지 나는 공부하는 학자나 저널리스트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어려서부터 해오던 피아노도, 무용도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대신 신문이나 잡지를 열심히 읽었고 집안에 가득했던 사회과학서적들을 들춰보는 일을 즐겨했었다.

그래서 1980년에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자연스럽게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민족경제론을 정립해보겠다는 당찬 꿈을 가지고. 하지만 1980년대 초 우리 나라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사회과학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공부한다는 것은 순탄한 일만은 아니었다. 당시 나와 나의 많은 친구들은 기존에 정립되어 있는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을 넘어서 보다 광범위한 사회, 정치, 문화, 교육체제의 문제에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고,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사회경제체제를 이해하는 것이 보다 현실에 근접하고 실천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저개발국의 실정이나 강대국을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세계체제의 논리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그러나 결국 실제로 얻은 것보다는 좌절감이 더 컸던 대학시절을 마치고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났다. 이후 약 10년간의 미국 대학생활을 통해서 나는 원래 전공인 경제학에서부터 국제관계학, 개발학, 사회학, 교육학 등을 넘나들며 실현 가능한 최선의 사회경제체제란 어떠한 것이며, 이를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실천의 방법은 어떠한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인디애나대학에 있었고 그 후 스탠포드대학으로 옮겨 경제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박사과정에서는 국제개발학과 국제교육정책을 전공했다.




유학생활을 통해 문화이기주의 벗어나

내가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외국에서 생활하며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리며 가장 충격적으로 느꼈던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남의 사회나 문화에 대한 지독한 편견들과 속 좁은 문화인종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좁은 땅덩어리 에서 혈연, 지연, 학연 등 연고에 기초한 파벌주의에 젖어 서로 아옹다옹 싸우면서도 대외적으로 우리는 제일 잘난 민족이고 우리만 잘되면 남의 나라의 시시콜콜한 문제는 상관이 없다는 식의 배타적인 사고방식에 은연 중 젖어있지 않은가. 우리는 인류라는 큰 공동체 안에서 모두 같이 잘 살아나가야 한다는 명제를 쉽게 망각하고 있다.

다양한 타 민족의 삶의 모습에 대해서는 이해하려는 노력도 관심도 별반 크지 않고, 특히 저개발국의 못사는 국민들이나 선진국의 유색인종에 대한 우월감과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다문화적인 사회와는 매우 거리가 먼 배타적인 환경에서 성장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경제의 양적 성장으로 국제사회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온 우리나라의 이런 면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었다. 내가 다닌 박사과정의 동료학생들은 학교 울타리를 맴돌던 나와는 달리 이미 국제기구나 비정부단체, 또는 저개발국에서의 현장경험을 통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첨예하게 느끼고 이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기 위해 학교로 되돌아 온 경우가 많았다.

학교 안팎에서 끊임없이 계속된 우리들 사이의 대화와 토론은 서로에게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빈부 격차, 인종과 성 차별, 인권문제, 환경, 교육 등 현상적인 문제와 그것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사회경제체제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국제기구론이라는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각종 국제기구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도 했는데 나는 실제로 세계은행과 스탠포드대학이 공동으로 벌인 프로젝트를 맡아 박사과정 중 3년 동안은 학업과 파트타임의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학업중간에 아이를 낳아, 꽤나 길게 대학원을 다녔던 나는, 1994년에 박사학위를 마치면서 내가 다니던 대학원에 남아 경제개발론과 노동경제, 여성교육론 등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되었다.




대학원 졸업 후 국제노동기구서 첫 근무

당시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재미를 붙여 푹 빠져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귀국을 할 것인가의 결정과 학교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분야에서 활동을 할 것인가의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있었다. 학문을 계속하는 것에도 미련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실천적인 일을 하고 싶은 욕구도 강했다.

그러나 한편 상당히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나는 당장 귀국을 해서 어떠한 틀에 묶이는 것에도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국제기구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었다. 이미 세계화의 추세는 경제사회문화의 각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었고 국제기구는 각국 정부들의 다자간 협상의 장(場)일 뿐만 아니라 각종 비정부단체들의 로비활동의 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이는 세계화의 진행에 따라 자국내의 문제가 결국은 지구촌의 문제와 연결되어서 해결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확대에 따라 각종 국제연대 움직임이 활발해진 데서도 연유한다.

이미 나의 박사과정 동료 중 몇몇은 학교 대신 국제기구를 선택해 진출했다. 그러던 중 국제기구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제네바에 소재한 국제노동기구(ILO) 본부에서 전문가를 찾으면서 각 대학 교수와 권위자들에게 추천을 요청했고 이미 국제기구에 대한 나의 관심을 알고 있던 지도교수가 그곳 출장 도중 나를 추천했던 것이다.

강의준비로 밤을 새고 새벽잠에 깊이 빠져있던 중 제네바에서 걸려온 전화는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특히 인권과 노동사회복지정책을 다루는 ILO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국제기구라서 더 그랬다. 어쨌든 요구하는 대로 이력서와 논문 등을 보냈고 다시 인터뷰를 하러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네바로 달려갔는데 거기서 발목이 잡힌 셈이다. ILO에서의 인터뷰는 구두시험이라기보다는 사람을 찾고 있던 연구팀의 팀장과 이미 일하고 있는 팀원들과 함께 각종 경제이슈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것과 같은 자리였다.

처음 방문한 ILO 본부는 우선 엄청 크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150개가 넘는 회원국을 대상으로 활동한다는 점을 따지면 우선 그 스케일 면에 있어서 내가 학교에서 경험하고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나에게는 커다란 유혹이었다. 떠나기 전 와주면 좋겠다는 비공식적인 제의를 받고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는 승낙을 하고 있었다.

기왕 외국생활이 길어진 참에 확실히 국제적인 경험을 쌓아놓자라는 욕심도 있었고 미국과는 매우 상이한 역사를 배경으로 특유의 정치이념, 경제체제를 발전시키고 문화전통을 간직해온 유럽대륙에서 살아볼 수 있다는 점도 마음을 끌었다.

그후 미국에 돌아와서 국제기구 특유의 더딘 행정절차를 기다리며 대학에서의 생활을 정리했고 1995년 4월에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남편을 뒤로 하고 두 살 박이 아이를 데리고 제네바행을 결행했다.




근무 초기의 악전고투로 알프스산도 뒷전

아니나 다를까. 초기에는 나의 초보적인 불어실력, 유럽의 낯선 도시에 정착하는데 따르는 온갖 불편함, 살인적인 제네바의 물가수준, 불충분한 유아교육시설, 우울한 기후 속에서 나와 나의 아이는 악전고투를 해야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할건 포기하면서 지내다보니 우리는 조금씩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졌고 아름다운 레만호도 알프스산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은 주로 영어로 했지만 비공식회의에서는 통역없이 불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불어로 작성된 문서를 읽고 검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불어를 쓰는 유치원에 다녔기 때문에 불어를 따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어와 불어 외에 유엔공식어 중 하나인 스페인어의 기초를 배우기도 했다.

조직에 속해 일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관계로 많은 부분이 생소하고 매일 산더미같이 쌓이는 일을 처리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었고 짧은 기간에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내가 ILO에서 일한 지 1년 반이 지난 1996년 12월에는 파리에 본부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우리 나라가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여 한국인들에게 채용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나는 이미 출장과 공동연구 사업 등을 통해 OECD와 접촉이 있었고 몇몇 직원들과도 잘 알고 지내고 있어서 그 기구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어느정도 기본적인 지식은 있는데다가 OECD가 가진 경제정책분야에 있어서의 전문성과 OECD본부가 있는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매력 등으로 해서 일찌감치 나는 이 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OECD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중국을 포함한 비회원국 아시아국가의 경제부문을 담당할 전문가를 구한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다. 그후 필기시험과 구두시험을 통과하여 1997년 10월부터 OECD의 경제국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OECD의 첫 정규직원이 된 것이다.




국제공무원은 세계인을 위해 일해야

이제 국제공무원이란 어떠한 직업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이다. 국제공무원은 간단히 말하면 UN이나 기타 국제기구에 고용된 직원을 지칭한다. 국제기구는 각국의 정부가 회원국으로 참가하는 공공기구이므로 국제기구 직원은 공무원인 셈이다. 이들의 봉급은 각국정부가 낸 분담금에서 지불되므로 결국 회원국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공무원은 어느 특정 국가의 이익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범국가적인 성격의 국제기구가 설정한 목표를 위해 일하는 󰡐국제적󰡑인 공무원이다. 따라서 국제공무원은 고용될 때 출신국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소속기구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서약을 한 후 일을 시작하게 되고 그에 따른 신분보장을 받게된다.

국제공무원이 하는 일은 국제기구 만큼이나 다양하다. 대표적인 국제기구로는 유엔(UN)과 산하기구, 그리고 각종 UN전문기구를 들 수 있겠는데 이 기구들은 평화유지, 인권, 환경, 복지, 교육, 그 외에 경제관련 전반의 영역에 걸쳐 활동한다. 이 외에도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 알게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TO), OECD와 같은 경제관련기구가 있고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지역경제기구도 있다.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UN을 제외하고는 많은 국제기구들이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데 예를 들면 유엔제네바사무국외에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세계지적소유권기구(WIPO), 세계기상기구(WMO), 그 외 비 정부 국제기구인 적십자국제위원회 (ICRC), 세계교회선교회 (WCC)등 수많은 기구들이 본부를 두고 있어 제네바의 한 지역에는 거대한 국제기구촌이 형성되어 있다.

프랑스 파리에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UNESCO)와 OECD본부가 있고, 이탈리아 로마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원자력기구(IAEA),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등이, 영국 런던에는 국제해상기구(IMO)가 있어 유럽각지에 국제기구본부가 흩어져 있다.

기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구들이 관장하는 영역은 상당히 다양하며 전문화되어 있다. 따라서 국제공무원들의 전공분야와 경력도 상당히 다채롭다. 일반적으로 국제공무원 중에는 경제학, 개발학, 국제정치학, 법학전공자들이 가장 많고 각종 통계분석을 위해 통계학이나 전산학 전공자도 상당수 있다. 그 외 기구의 관할영역에 따라 전공분야는 문과와 이과를 망라해 실로 다양해진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외롭고 고달픈 직업

어느 직업이나 그렇듯 국제공무원이라는 직업도 자기 취향에 맞아야 즐겁게 일을 하며 길게 버틸 수 있다. 똑같은 직업상의 특성이 누구에게는 장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잘 알고 선택하는 것이 후회나 시간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직업에 대한 소개는 가능한 냉정하고 공정해야할 것 같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국제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부쩍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에는 이 직업이 국제무대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화려하고 편안한 직업이라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일부는 맞는 얘기지만 많은 부분은 환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고정관념만으로 이 직업을 선택한다면 실망하거나 좌절할 수 있다.

사실 국제공무원은 겉으론 화려하지만 속으론 외롭고 고달픈 직업이다. 국제공무원이라는 직업은 개인적인 부나 세상에서 흔히 따지는 잣대에 기초한 명예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직업이다. 여러 가지 수당과 혜택이 주어지기는 하나 개개인들의 학력이나 자질을 놓고 본다면 봉급이 특별히 높은 편은 아니다.

유급휴가가 일년에 30일이고 원칙상 주 40시간 근무여서 한가할 것 같아도 근무시간중 노동강도는 상당히 높고 늘 초과근무를 하게되며 고되고 잦은 해외출장도 견뎌야한다. 승진 등의 인사관리에 있어서 지부에서의 근무경력을 높이 인정해주므로 근무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은 본부에서만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험지나 오지라고 여겨지는 지역에서의 장단기근무도 늘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점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또 주로 한시적인 계약제로 일하고 정치적인 자리인 최고위직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철저히 실력위주의 인사관리를 하기 때문에 잠시도 한 눈을 팔기가 힘들다. 기구마다 편차는 있지만 상당히 관료적인 분위기를 견뎌야 할 경우가 많고 일반 공무원들처럼 끊임없는 보고서 작성에도 시달린다. 게다가 자신이 힘들여 연구하고 쓴 글이나 보고서는 기구의 이름으로 출판되기 때문에 개인의 이름을 밖으로 알리기는 쉽지 않다. 몇몇 고위직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백의종군하는 것이다.




세계평화와 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제공무원들은 나름대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국제공무원이 되기 위한 경쟁도 다른 어느 직종보다 치열하다. 왜 그럴까? 이는 세계평화와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명감과 자부심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점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 직업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직업이 주는 조건과 기회에 만족하는 편이다. 어차피 많은 돈을 버는데에 큰 관심과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현재 봉급으로 쓸 만큼 쓰고 여행하는 데는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보조가 나오고 은퇴 후에 받는 연금도 나쁘지 않다. 계속 근무를 하게 되더라도 노후걱정이 없으니 구차하게 다른데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 이국 땅에서 사는 외로움은 크지만 2년에 한번씩 온 가족을 출신국에 보내주는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귀향휴가제도가 있어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특히 전세계를 무대로 일하기 때문에 얻어지는 넓은 경험의 폭과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기 쉽다는 점은 나에게 큰 매력으로 느껴진다. 또한 실력위주의 인사관리를 하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자기 실력과 경험만 착실히 쌓으면 성별이나 연공서열에 관계없이 승진의 길이 열려있으니 한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많은 여성직장인과 비교할 때 틀림없이 좋은 조건이다.

이 모든 점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 직업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플러스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개인생활의 안일을 떠나 저개발국이나 분쟁의 현장에 뛰어들어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자신이 힘들여 일한 성과가 개별국의 정책에 반영되어 그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이나 인권신장에 도움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직업이 주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외국인들과 부딪치며 일하는데서 쌓이는 스트레스도 만만치는 않지만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인다는 열린 자세로 일하면 하루하루가 새롭다. 국제공무원이 외로운 직업이라고 하는 데는 단지 이국 땅에서 서로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이 직업의 외로움은 인간이 사는데 때로는 필요한 소속감이상대적으로 약한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는 데서 나올 것이다.

정체성이 분명한 한 국가의 틀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서 주인 없는 둥지에 철새처럼 떠돌아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기를 갈구하면서도 소속감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런 심리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활동하는 것이 더 가치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쌓은 경험과 지식이 우리나라에서 유용하게 쓰여질 것을 기대하며 나의 소속을 찾아 돌아가서 일하는 것도 항상 마음 한편에 두고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갈등과 좌절

나는 첫 국제기구 근무처인 ILO에서 1995년 5월부터 약 2년 반 동안 일했다. ILO는 사회정의와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서는 노동조건의 개선을 통한 인권신장이 우선되어야한다는 인식 하에 1919년 설립되어 2차대전후 처음으로 유엔산하의 전문기구가 된 국제기구이다. 정부간 기구인 다른 국제기구와는 달리 삼자구성원칙에 따라 동일한 발언권을 갖는 정부, 사용자, 노동자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국제기구 중에서는 특별한 점이다.

한국은 UN에 가입한 해인 1991년에 ILO에도 152번째의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였고 내가 한국인 직원 2호였다. ILO에 들어가 내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세계고용보고서>라는 ILO의 정기 공식출판물을 집필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위해 ILO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불리는 팀장 밑에 4명의 경제분야 전문직원으로 특별팀이 구성되었는데 이 4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자들이었다. 그 중 3명은 미국에서 공부한 멕시코인, 중국인, 한국인(나)이었고 나머지 1명은 프랑스인이었다.

우리 네 사람은 모두 이 작업을 위해 새로 채용된 직원들이었고 그래서인지 이 팀은 무척 활기 있게 굴러갔다. 이 보고서는 당시 선진국, 구 사회주의권 국가,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겪고 있는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 확대의 문제에 대해 ILO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적극 대처해오지 못하고 있다는 내외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시도된 작업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기존의 연구결과와 자료를 정리하고, 외부의 학자들에게 연구 프로젝트를 주고, 독자적인 연구도 진행해서 얻은 최종적인 연구성과를 집필하는 일이었다. 이 작업은 약 1년이 넘게 걸려서 진행되었는데 원고초안이 나온 후 기구내의 각 대표단의 최종검토과정에서는 미국식의 신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택한 나라들의 빈부격차 확대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다룬 나의 글이 문제가 되어 기구 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미국 측은 사용자대표단을 중심으로 한 로비를 통해 원고수정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노조대표 측과 일부 유럽국가와 개도국측이 이에 항의하여 험한 분위기 속에서 몇 차례의 회의와 막후교섭이 진행되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정부뿐만 아니라 각 국가내의 사용자측과 노동자측이 모두 대표로 참여하는 기구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남북, 노사 측의 대립이 첨예하게 노출되는 순간이었다. 국제기구 내에서 눈에 안보이게 진행되는 힘의 대결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타당한 이유 없이 연구결과를 수정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어정쩡한 수정보다는 아예 삭제하는게 낫겠다 싶어 원고 일부를 최종보고서에서 삭제하게 됐다. 나는 이 일로 상당히 큰 좌절감을 느꼈지만 이 과정에서 국제기구의 생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최종보고서가 나온 이후에는 관련국제회의에서 ILO의 입장을 요약발표하고 각국언론에 홍보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나는 이 작업이 끝난 후에는 개별국가의 구체적인 정책을 다루는 일을 맡기를 희망했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 당시 새로 구성된 특별팀으로 옮겼다. 이 팀이 하는 일은 유엔개발계획(UNDP)과 세계은행 등의 협조 하에 고용확대를 위한 각국 정책사례연구를 하고 정책권고안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이 팀의 코디네이터로서 각 지역에 걸쳐 사례국가들을 선정하고, 이들 국가들의 노동, 고용정책을 검토하는 작업을 각 기구의 전문가에게 분배하고, 기구간 회의를 주선하고 권고안을 작성했다. 이전의 일에 비해 행정적인 비중이 많은 일을 하면서 국제기구들이 어떠한 결정과정을 거치고 실지로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ILO의 노동기준과에서 요청이 있을 때마다 회원국들이 ILO 고용기준을 실지로 적절한 국내정책을 통해 시행해가고 있는가를 심의하는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또 이와는 별도로 UNDP와 카자흐스탄정부의 요청으로 카자흐스탄의 고용정책부문의 기본틀을 만드는 작업에 기술적인 협조를 제공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정말 많다!

국제공무원이라는 직업은 국제화, 세계화시대를 맞아 앞으로 계속 각광을 받을 직업이라고 여겨진다. 이미 냉전질서가 붕괴된 이후 국제체제내의 힘의 재분배와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세계 각국은 전세계 차원의 국제기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와 함께 중요한 외교의 주체이자 활동의 장으로서의 국제기구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국제기구의 활동이 국가외교와 일반시민의 삶에 점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됨에 따라 국제공무원의 위상도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된다. 또 이러한 국제환경의 변화 속에서 국제공무원에 대한 국내의 인식과 관심도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되어 앞으로 국제공무원직은 평생의 직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데에도 유리한 국제경험과 전문성을 길러주는 직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거의 완벽한 남녀평등의 고용조건이 주어지는 국제기구는, 한국 등과 같이 고급여성인력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나라의 여성들에게는 국내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와 조건을 누리며 일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직장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기구마다 다소 차이는 있어도 남녀분포를 동등한 수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 건 기구들이 많고 직원들의 국가분포도 고르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수인 한국 국적의 여성에게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고위직에 있는 여성의 수가 아직 극히 적어 앞으로 입직후 승진의 기회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전문직에서 활동할 꿈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한번 승부를 걸어 볼만한 곳이라고 권하고 싶다. 국내에서 자신의 실력과 포부를 마음껏 펼치는 것이 어렵다면 오히려 더 넓은 세계에 도전하여 더 큰 뜻을 펼치며 활동하는 게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방법이 아닐까?

끝으로 이 책을 읽고 있는 후배 여학생들에게 나의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말을 당부하고 싶다. 첫째, 자신의 적성과 희망하는 직업에 대해 신중히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끊임없이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그 일 자체가 미치도록 좋아야한다. 미치도록 좋지 않은 일에 왜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허비해야 하겠는가? 물론 자신의 취향과 적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일을 그려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개인의 개성과 자질을 무시하고 원칙없이 편견에 기초한 집단의 가치를 개인에게 따르도록 압력을 가하는 경향이 많은 우리사회에서는 자신에 대한 공정한 판단도 이를 실천에 옮긴다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직업이나 일의 세계로 향한 첫 번째 결정은 아마도 대학에 들어갈 때의 전공선택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의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나의 경우 더 좋은 대학의 인문계로 가라는 선생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100명이 넘는 남학생들 틈에서 󰡐홍일점󰡑으로 다니느라 힘들고 외롭기도 했지만 그 결정에 대해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내 적성에 맞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진해 나가는데 바탕이 되어 줄 전공이 어떠한 것일지는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아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탐색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는 눈치보지 말고 소신껏 밀고 나가야한다. 내 인생은 결국 나만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이므로.

둘째,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21세기를 무대로 활동할 여러분을 뒷받침해주는 기본자질이 될 것이다. 특히 여러 면에서 취업의 불리함을 감당해야하는 우리 여성들의 경우 어떤 영역에서든 전문성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활동의 무대를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만일 국제기구나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데 관심이 있다면 전문성의 확보와 함께 외국어능력은 필수적이다. 이중 어느 것 하나만 가지고는 무척 힘들다.

사실 나도 외국어를 뒤늦게 익히느라 고생한 경우인데 여러분도 잘 알겠지만 나이가 들어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거의 고통의 수준에 가깝다. 그래도 다문화적․다언어적인 환경에서 자라면서 불어, 영어, 한국어를 읽고 쓰고 구사할 줄 아는 내 아들을 보면서 겁 없이 돌아다닌 엄마 덕분에 결국 2대를 걸쳐 가족의 국제화를 이루었다고 농담 섞인 자랑을 하곤 한다.

어쨌든 만일 국제기구에 관심이 있다면 적어도 외국어 한 개는-주로 영어-자유롭게 쓰고 읽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분야와 기구에 따라서 한 두 가지 외국어를 더 할 수 있으면 훨씬 유리하다. 제네바나 파리에 있는 국제기구에서는 불어가 필요하고 그 외 서반아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알아두면(적어도 기본이라도) 유리한 점이 많다. 전문성의 확보와 외국어능력은 앞으로 여성들이 자신있게 일하는데 무척 유용한 자산이다.

마지막으로 폭넓게 사고하며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을 키우는 노력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늘 의문을 가지고, 뚜렷한 관점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는 창의적이고 폭넓은 사고력을 키우는데 필수적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신문이나 잡지도 열심히 읽고 여러 종류의 다양한 서적을 탐독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주위의 친구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여러분의 친구들은 단지 입시의 경쟁상대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를 자극하고 이끌어줄 동반자이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한국에서 어느 대학을 다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얼마나 세계적인 안목과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지금 여러분은 거대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한발 한발 힘차게, 자신있게 인생을 설계하고 열정적으로 밀고 나가라. 성실하고 폭 넓게 사고하고 용기있게 사는 자들만이 결국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상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일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작은 욕심이 있다면 여러분이 도움이 필요할 때나 힘든 일에 부딪힐 때 선배로서 작은 힘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주저없이 연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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