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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토종'의 좌충우돌식 유엔 진출기

[중앙일보] 입력 2006.08.31 14:51 / 수정 2006.08.31 17:37

맨발로 3년 반 동안 80개국 배낭여행 등 특이한 경력으로 유엔 입성에 성공한 임형준씨의 충고

유엔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어떻게 하면 유엔에 들어가죠?" "전공은 뭘 해야 하나요?" "어떤 경력이 도움이 되나요?" 감히 말하지만 정답은 없다. 유엔기구 직원은 다양한 국적만큼 경력이나 배경도 다양하다. 사람들은 흔히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만큼 영어는 무조건 '네이티브' 수준에 국제감각이 뛰어난 해외파만 유엔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런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만 교육받았고, 20세까진 해외라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따라 제주도 한 번 다녀온 정도의 순수 '토종'이다. 더구나 중.고교 시절을 방황으로 보내다 전기 대입에서 낙방하고 후기에 간신히 한국외국어대 루마니아어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도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4년간 '장학금 면제혜택'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대학 시절 내내, 아니 철들면서부터 나를 따라다닌 큰 화두가 두 가지 있었다. "일생 동안 과연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원초적 질문에 답을 얻으려고 방황도 많이 했다. 술도 위장에 구멍이 나도록 마셔 봤고, 심각하게 고민도 해 봤다. 그러나 고민은 더 큰 고민만 나을 뿐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꿈꾸던 세계일주 여행을 실행에 옮겼다. 좁은 땅에서 아등바등 사느니 넓은 세상을 보면(다시 말해 높은 산을 오르면) 낮은 산은 저절로 보이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1달 반 동안 미국 배낭여행을 필두로 유럽 2달, 아시아 5달, (그리고 증세가 점점 더 심해져) 오세아니아.아프리카.중남미.중동 등 무려 3년 반 동안 전 세계 80개국을 배낭 하나 메고 돌아다녔다. 여비를 마련하느라 막노동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돈을 아끼느라 히치하이킹과 노숙을 밥 먹듯했다.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그렇게 5대양 6대주에 내 발자국을 남겼다.

여러 나라를 보며 많은 걸 느꼈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세계 도처에서 목격한 처절한 '기아와 가난'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다리 하나가 잘린 아이가 내 발을 붙잡고 먹을 걸 달라고 절규할 때, 아프리카에서 먹을 게 없어 파리가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아사 직전의 아기를 볼 때는 가슴이 찢어졌다. 그러곤 이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할 일이 없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1995년 동아프리카에 있는 조그마한 말라위란 나라에서였던 듯하다. 시골마을을 지나는데 긴 줄에서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뭘까 하고 갔는데 유엔에서 주는 식량을 받으려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순간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듯 뭔가가 환하게 밝아오며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저게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유엔에서 저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언젠가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는 방향은 일단 정했지만 사실 막막했다. 유엔이 뭔지도 자세히 몰랐고, 유엔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있다는 소리도 못 들었다. 그러나 서서히 꿈을 실현해 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경험과 배낭여행 시절 배운 외국어 몇 개 덕분이었다. 97년이던 대학 4학년 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구조조정 칼날이 시퍼렜지만 비교적 쉽게 좋은 직장을 잡았다. 이젠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간다'고 결심하곤 외국어대 국제대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맞물려 출범한 국제대학원은 '국제 실무전문가 양성'이라는 목표 아래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했다. 국제기구 인턴십도 무척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대학원 입학 후 '유엔 입성'이란 단 한 가지 목표에 전력 질주했다. 경력은 당시 한국에 있던 내 또래에 비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유엔에서 인턴십을 얻는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학기 내내 외국인 교수와 친구들을 괴롭히며 이력서를 갈고 다듬어 유엔기구 수십 군데에 지원했건만 단 한 군데서도 연락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외여행 등 다양한 경험은 있었어도 유엔기구에 뭔가를 기여할 실질적 경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쓰라린 실패를 맛본 뒤 내 경쟁자는 국내의 같은 또래가 아니라 전 세계의 날고 기는 똑똑한 대학원생들임을 깨달았다. 동시에 경력도 체계적으로 관리해 가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났을 무렵 이력서엔 국제기구의 이목을 끌 만한 경력이 제법 쌓여 갔다. '루마니아 NGO에서 자원봉사', '대학원 연구조교와 인턴십 프로젝트 조교', '외교통상부 인턴', '대학원 원우회장' 등등. 이력서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춰 가자 2학년 1학기부터 낭보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뉴욕 유엔본부를 필두로 제네바의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빈의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 유엔개발계획(UNDP) 몰도바 사무소와 아제르바이잔 사무소 등 다섯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1학년 때는 수십 군데를 넘게 지원해도 한 군데서도 답이 없다가 1년 후엔 갑자기 오라는 곳이 너무 많아 어디를 갈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결국 유엔의 심장인 뉴욕에서 일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해 유엔본부에 가기로 결심했다. 서류가방을 들고 맨해튼 거리를 활보하며 만국기가 펄럭이는 유엔본부에 첫 출근하던 때의 황홀감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세계 평화와 인류번영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 유엔-. 하지만 그 심장부에서 3개월간 일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목격했다. 만연한 관료주의와 비효율, 그리고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가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는 꿈꾸고 동경하던 유엔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실제로 유엔의 일이 집행되는 모습을 보려고 본부의 동유럽 지역 담당자를 찾아가 '담판'을 했다. 결국 동유럽 알바니아 UNDP 사무소의 인턴십 자리를 얻었다. 대학원에선 현장 근무를 하며 논문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다. 알바니아 경험을 통해 정말 유엔이 정부나 NGO와 어떻게 협력하며 본부에서 결정된 정책이 현지에서 어떻게 집행되는지 직접 보았다. 뉴욕본부의 숲과 알바니아 현장의 나무를 동시에 본 소중한 기회였다.

인턴을 하며 여러 군데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린 결과 코소보 유엔사무소의 자리를 구했다. 무급 인턴에 단기직이었지만 유엔 직원이 되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3년 반 동안 해외를 돌아다니고 나니 서서히 해외생활에 신물이 났다. 이젠 한국에 정착해 그냥 '평화로운' 삶을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거절하고 한국의 한 공공기관에 취직했다. 1년 반 동안 평화로운 생활을 하며 다시 내 인생을 돌이켰다. 20대에 전 세계를 누비며 가슴에 품었던 '세상의 중심에 서서 기아와 빈곤을 퇴치하고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큰 뜻은 어느덧 퇴색해 갔다. 그러자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 직장 생활 시작 후 1년 반이 지나 다시 내 운명을 시험하기로 했다. 외교통상부에서 실시하는 JPO 선발시험 응시였다. 그 해가 연령으로만 따지면 시험을 쳐 볼 마지막 기회(만 32세)였다.

JPO 시험은 단기간 준비가 불가능하다. 언어 시험 비중이 높고, 경력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암기과목이야 시험 며칠 전에 급히 외우면 되지만 언어는 장기간의 투자와 노력이 요구된다. 바꿔 말해 언어의 기본이 튼튼한 사람은 크게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2001년 응시 당시엔 1차가 TEPS였고, 2차는 영어논술, 영어면접, 한국어 면접, 그리고 제2 외국어 면접이었다.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면서도 대학원 동기들과 주말마다 꾸준히 영어 공부를 했기 때문에 영어는 어느 정도 감각이 살아 있었고, TEPS는 기출 문제를 여러 번 풀어 보니 감각이 붙었다. 그래서 1차는 무난히 합격했다.

그러나 2차 시험 면접장에 나온 사람들의 면면은 순수토종인 나를 주눅 들게 했다. 1차 합격자 대부분은 해외 명문대 졸업자이거나, 영어가 '모국어' 수준인 해외파들이었다. 그래도 내가 믿을 구석은 경험이었다. 그 누구도 나처럼 '신들린 듯' 세계를 나다니진 못했을 테고, 유엔에서도 인턴을 거치며 본부와 현장을 두루 섭렵한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사실 응시자 중 다수는 유엔에 합격하면 본부에 들어가 화려한 '화이트 칼라의 삶'을 꿈꾼다. 그러나 내겐 유엔에 합격하면 가장 어려운 곳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면접 시 이를 강조하면 승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워낙 경쟁이 치열한 시험인지라 큰 기대는 안 했다. 그러던 2001년 4월 어느 날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JPO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수석으로(2차 시험은 면접 비중이 높아 등수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외무부에서 두툼한 종이 뭉치가 도착했다. JPO로 갈 전 세계 유엔기구와 지역 리스트였다. 유엔 정식직원으로 남기에 유리한 기구도 별도로 추천됐다. 현장에서 제일 많이 일하는 기구, 가장 어려운 사람을 돕는 기구로 가야 한다는 판단에 주저 없이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을 선택했다. 파견지는 아프리카가 더 끌렸지만 제2 외국어인 스페인어를 확실히 하자는 생각에 중남미 온두라스를 택했다.

2년간의 온두라스 생활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업무 능력이 출중하면서도 직원들을 잘 챙기는 상사를 직속상관으로 만났고, 그분에게서 체계적으로 업무를 배웠다. 또 온두라스 정부 사람들과 영양실조 아동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상당한' 업무 성과를 올려 정부와 유엔 동료들에게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JPO는 말 그대로 Junior Professional Officer(국제기구 초급전문가)다. 직책과 혜택은 유엔 직원과 똑같아도 일체 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한다. 그리고 2년 근무 후 업무 실적을 통해 유엔이 정식직원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JPO에서 정규직으로 발령받는 과정은 피를 말렸다. 예산 문제로 신규 채용이 줄었고, 2002년엔 WFP JPO로 나를 포함해 15명 정도가 들어왔는데 최종적으로 4명만 정규직이 됐다. 나도 이 4명 안에 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업무성과였다. 그러나 현장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별 '인맥'이 없는 나로선 맨땅에 '머리를 부딪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JPO 계약만료 6개월 전부터 총력전에 나섰다. 독일인이었던 직속 상사는 자기가 아는 여러 사람에게 나를 적극 추천하며 도와줬고, 로마에 있는 한국 대사관 WFP 담당관도 많은 배려를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JPO 기간이 만료되는 달까지 자리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상사는 좀 더 기다려 보라 했고, 2개월간을 무보수로 일하며 계속 자리를 찾았다(일단 유엔 밖으로 나가면 들어오기가 훨씬 더 어렵다). 수많은 전화 인터뷰로 가슴 졸이던 나날이 지나고 드디어 기니비사우에 정규직원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기니비사우는 인간개발지수 통계가 나와 있는 세계 177개국 중 172위인 매우 열악한 환경이며 근무 기간 중에도 쿠데타, 국경지역 분쟁, 난민 발생 등 수많은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런 곳이야말로 내가 유엔을 꿈꾸며 가장 일하고 싶은 환경이 아니었던가. 2년 남짓한 기간 프로그램 총담당관으로 열심히 일해 좋은 평가를 받고 P-3급까지 진급했다. 이달부터는 새 부임지인 라오스에서 근무 중이다.

(궁금한 점이 더 있으면 JPO-5기 출신들이 만든 사이트 www.freechal.com/jpo를 참조하라)


(뉴스위크 9월 6일자)
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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