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가는그녀들 낙서장
2008/08/06 12:21 http://blog.naver.com/joy_0920/150034010843 |
유엔으로 곧장 진출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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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엔으로 곧장 진출하다 아무리 국제 전문가가 되고 싶어도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국제기구 인턴십으로 걸음마를 떼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전 세계 쟁쟁한
실력자들을 두고, 학부생이 합격하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기. 스물 세 살 정한나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유엔 인턴이 됐다. 게다가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한 ‘학부에서 바로 유엔 정규직’의 꿈도 손에 넣었다. 유엔공보국(DPI) 인턴 정한나는 어릴 때부터 국제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이슬람권을 드나들며, NGO에 대한 개념도 어렴풋이 생겼다. 종교 문제로 ‘선교사’ 대신, ‘NGO 활동가’라는 명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후에 본격적으로 NGO의 문을 두드렸다. 대학교 3학년 때, 3달간 NGO 국제연구소 인턴을
했고, 유엔 ‘세계 평화의 날’ 기념 국제학술회의 때도 NGO 관계자들의 어시스턴트 역할을 했다. 그 다음 해엔 외교통 상부 통상법무관실
인턴으로 한달간 일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정한나는 점점 유엔에 욕심이 났다. 하지만, 알다시피 유엔 인턴은 대학원생만 지원할 수 있지
않던가.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우리나라엔 두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바로, 여성부 국제전문 여성 인턴과 경희대학교
UN/INGO 프로그램이다. 여성부 인턴은 대학원생만 가능하지만, 모교인 경희대학교라면 얘기가 달랐다. 학부 3학년부터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한나는 서류, 에세이, 면접, 워크숍 등 치열한 과정을 뚫고 최종 5명에 들었다. 어린 시절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대학교에 와서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덕에 어학 실력을 탄탄히 기른 게 큰 도움이 됐다. 2. 현장에서 |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 역사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본부 혹은 지역사무소의 장으로,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제이주기구(IOM) 한국사무소 대표 이정혜다. “몇 해전 11월이었어요. 카자흐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가기 위해 밤 비행기를 타러
갔죠. 활주로에 구 소련 시절의 조그만 비행기가 있더라고요. 바퀴가 닳아서 부서질 것 같았어요. ‘아, 드디어 내가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게다가 파일럿이 옆을 지나가는데 보드카 냄새가 확 풍기는 거예요. 당시 함께 갔던 상사가 ‘구 소련 파일럿들은 비상착륙을 기가 막히게
하니 염려 말라’기에, ‘비상착륙 훈련 실력 좀 보겠네’ 하고 ‘센 척’ 했지만, 3시간 내낸 잔뜩 긴장한 채로 진땀을 흘리면서 날아갔던 적이
있어요. 국제기구는 이런 곳이에요. 납치도 아주 흔해요. 잘 풀려나기도 하고 아닌 경우도 있죠. 어차피 국제기구는 인질의 몸값을 많이 줄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네 입장을 이슈화시키려고 그러는 거예요. 위험한 지역에 가면 사고로 죽기도 하죠. ”
국제이주기구(IOM) 한국사무소 대표 이정혜는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를 쏟아냈다. 그녀는 국제기구에 일하는 한국 여성들 중 ‘맏언니’격으로, 본부
사무국과 현장을 섭렵한 베테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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