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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1 11:33:25, hit : 3,082 |
국제기구 경험담
JPO 7기 이지은
UNICEF 방글라데시 사무소 근무 중
본인은 외대 태국어과 94학번, 외대 국제지역대학원 99학번으로서 최근의 많은 국내 대학/원생들이 관심을 갖게된 국제기구 취업, 그 희망 그룹 중 초창기 세대라고 할수 있겠다.
태국과 동남아지역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이 지역의 지역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로 국제지역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UN과 국제기구 취업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대학원 재학 중 운좋게 붙은 UNDP 본부 아태지역국 메콩강 개발사업팀 인턴십을 시작으로 UNDP 태국사무소 두번째 인턴십, UNAIDS 아시아 지역사무소(방콕) 6개월 계약직, UNICEF 아시아지역사무소(방콕) 6개월 계약직을 거치면서 UN이 어떤 곳인지 경험할수 있었다.
그리고 2003년 JPO 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UNICEF 방글라데시 사무소에서 근무 중이다.
2년간의 JPO기간이 끝난 후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모르나, UN은 나같은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오게된 사람으로서 현재 꿈꾸고 있고 또한 계속해서 들어오게 될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1) 각 기구의 차이점, UNICEF의 특징.
UN의 역할을 크게 Stage 와 Actor로 구분할수 있다면, UN Secretariat이나 WHO, FAO, ILO, UNESCO, IAEA, ICAO 등 전문기구들은 본부와 Regional Office 를 중심으로 Member States간의 정책 조율과 연구 활동을 하는 Stage 역할이 더 중시 된다고 한다면, UNICEF, UNHCR, WFP, Peace keeping operation 같이 field operation이 중심이 되는 기구들은 Actor의 역할이 더 강조되는 조직이라고 할수있다.
본인이 근무중인 UNICEF는 Country Office 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decentralized 된 기구이다.
Decentralized의 의미는 Country Office 스스로 사업 내용과 예산을 기획하고 Donor 정부로 부터 직접 funding을 받아서 집행하는 반면 본부나 Regional Office는 back-up 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UN이라는 큰 시스템 안에서도 어느 기구 어떤 파트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일의 내용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UN의 업무는 이렇다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2) UN은 봉사 단체가 아니다.
UNICEF, WFP, UNHCR과 같이 field operation이 강조되는 기구라고 할지라도, 결국 사업은 정부와 함께 추진한다.
UN의 업무 대부분, 즉 선진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내고, 후진국 정부와 함께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전세계 국가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정책 토론과 합의를 도출하게 만드는 일에까지, 모두 일차적인 counterpart는 정부이다.
이것은 UN의 이름이 United Nations 이고 정부간 합의체라는 태생적 성격에서 부터 알수 있겠다.
우리가 UN의 홍보자료를 통해 보는 굶주린 어린이들, 폭력에 시달리는 여인들, 사창가에 팔려가는 어린 소녀들과 UN사이에는 수많은 연결고리가 있고 따라서 그 거리감은 꽤 있다.
UN직원으로 field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본인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학교를 지어주고, 식량을 나눠주는 일을 할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그림의 10% 정도만 보는것이다.
그런 action 자체는 지역 정부 혹은 크고 작은 NGO 직원들이 한다.
UN은 한단계 위에 있다. UN직원의 역할은 그와같은 setting이 마련되게끔 수혜국 중앙 정부와 협상하고 지역 정부 관리들과 NGO 들을 manage한다.
수시로 시찰을 다니며 경과 보고서를 잘 써서 donor들에게 현황을 알리고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즉 선진국 donor 정부와 수혜국 정부 간의 중간자적인 역할과 그 행정의 묘를 발휘하는 것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수혜국 정부와의 협상은 대체로 지루하며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산적한 문제에 힘있게 대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N이 정부와 일하는 이유는 UN자체는 한 나라 영토내에서 법적 행정적 집행 권한이 없기 때문이고 결국 그 나라의 주권은 그 나라 국민과 정부에 있기때문에 정부의 capacity building을 통해 장기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를 배제하고 일할 수는 없다.
따라서 UN직원은 International Activists가 아니다.
Passion 과 compassion 이 이 일을 하는데 기본적인 정신이긴 하지만 직접 가난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마주치며 헌신을 다해 행동으로 돕고 싶다면 NGO나 KOICA, Peace Corp 등 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것이 더욱 보람있을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UN은 정부와 상대하는 "정치적"인 조직이며 어느 공공 기관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룰과 절차를 중요시 한다.
개인의 개성보다는 조직의 목소리를 중요시하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유엔 직원은 말 그대로 국제 "공무원" 이며, 따라서 유엔에서 일한다고 해서 이것을 마치 "평화의 수호자" "인류 구원의 천사" 비슷하게 너무 감상적인 기대를 하고있다면 실망할 때도 있을것이다.
3) 이미 준비된 사람이 필요하다.
아무리 entry-level 인 JPO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UN 조직은 이미 준비된 사람을 환영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조직 문화처럼 불특정 다수의 신입사원을 뽑아서 처음 몇 달간 처음부터 하나씩 가르쳐주는 문화가 아니며, 그것을 기대하고 있으면 결국 시간 낭비만 한다.
따라서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혼자서 헤쳐나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본인 또한 이 부분을 적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우리나라 JPO들은 다른 나라 JPO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문 분야 경력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우리의 약점이다.
얼마전 UNICEF South Asia 지역에서 근무하는 모든 신입사원들이 (JPO 포함) 인도 뉴델리에 모여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본인을 포함해서 일본, 네덜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의 13며의 JPO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결국 이제는 전문가 시대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물론 본인처럼 generalist 들도 있지만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들 하지만, 그보다는 "나는 educationist야", "나는 lawyer야", "나는 nutritionist야" 라고 딱 부러지게 소개하는 모습들이 조금 부러웠다.
UN이 "절대선"도 아니요 그 자체가 "직업"은 아니지 않는가. 본인 스스로 자신의 인생의 직업을 먼저 다져 놓는게 우선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UN의 최근 추세는 평생 직장, 종신 계약은 사라지고 필요한 공석에 이미 준비된 사람을 충당한다.
UNICEF의 경우 이제 permanent post는 모두 없애고, 모든 계약은 2년으로 시작으로 한다.
조직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외부인사, private sector 출신들도 많이 고용하고 있다.
위에 말한 신입사원 교육시 JPO들의 trainer로 와주신 30대 중반의 미국 여자분은 원래 IBM의 HR 분야에서 일하다가 Peace Corp의 field operation분야로 옮겼으며 그 과정에서 UNICEF와 연결되어 현재 UNICEF 부탄 사무소의 Operations Officer로 있는 분이었다.
그 분 말이 자신이 바로 UNICEF의 새로운 recruitment policy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면서 앞으로 이러한 개방형 임용이 늘어날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JPO나 entry level로 시작하여 일찌감치 인맥을 다져놓는 것도 좋지만, 일단 자신의 전문 분야를 확실히 다진 후 중간 레벨 (P-3, 4)로 UN에 들어오는 것 또한 적극 권하고싶다.
UNICEF 에서 일하려면, Education, Health and Nutrition, Water and Sanitation, Communication, Child Rights, Gender 등의 분야의 학위를 갖고 관련 분야에서 필드 경력을 화려하게 쌓으며 자기 이름이 "입소문"이 나게끔 하는것이 필수이다.
4) Welcome to the life of Gypsy
조금 개인적인 얘기로 이 글을 마감하고 싶다. 우리 사무실에 동료 직원들은 스스로를 농담 삼아 Gypsy 라고 부른다.
세계 곳곳을 3-4년 주기로 옮겨다니다 보니 이젠 UN자체가 국적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normadic 한 삶을 누구나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즐길 줄 아는 것은 아닌듯 싶다.
본인은 올해 2004년 1월 방글라데시에서 일을 시작했으니 지금까지 7개월을 근무한 셈인데, 마치 큰 전쟁을 치르고 온 느낌이다. 대단한 일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땅에서 내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과정이나, 직장에서 나도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하는 매일의 긴장감이 무척 피곤했다.
나태해진 나를 매우 독립적이며 프로답게 만들기 위해 겉으로는 점잖은척 우아하게 지냈어도 가슴으로 속앓이를 많이 했다.
본인이 근무하는 UNICEF Bangladesh Country Office 는 250명 정도의 직원이 함께 일하는 UNICEF 전 세계 사무소 중에서 가장 큰 사무실이다.
아주 오래전 (80년대 초) 현재 대한적십자사 총재이신 이윤구 선생님께서 Representative로 2년간 근무하신 이후로 내가 첫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이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이미지를 처음 심어주는 것이라 더 잘해야 겠다는 책임감 때문에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지금 잠시 서울에 휴가로 나와서 한발짝 여유를 두고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과정이 또 다른 배움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내가 유엔에 몇 년간 일하는 것이 최종 도착지가 아닌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모든 인생의 연결 고리가 있듯이 이 경험을 통해 또한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다.
이제 세계 어느 곳에 가든 탐험하고 정착해 나가는 과정에 겁이 없어졌으니 이 또한 나의 직장에 감사 할 부분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또 다른 종류의 배움의 과정을 한번 여유롭게 즐겨보자고 힘들때 마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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