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유럽부흥개발은행 EBRD) 취업 성공수기

한국인이라 참 잘되었다

빈나리 [영국 | 유럽부흥개발은행]

나는 현재 유럽부흥개발은행 EBRD의 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SME) Finance and Development Group의 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25개 국가의 중소기업들을 자문해 줄 수 있는 대기업 CEO 등 고위 임원 출신의 어드바이저들을 채용하는 일로서, 지식 공유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유능한 한국인 인재를 채용하여 EBRD 지원국인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일이다. 또한 EBRD의 아시아 출신 직원들 간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고 은행 내외에서 한국 및 아시아 문화 알리기에 기여하고자 아시아 지원국의 정부 관계자 및 직원들을 모아 EBRD 아시아 네트워크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한국인 인재로의 꿈

“나리, 네가 한국인이라 참 안됐다.”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당시 공부하고 있던 영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을 때 주위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외국 친구들의 반응과 위로를 통해 비록 어리지만 국가의 존망이 한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나는 훗날 반드시 한국이 세계의 주역이 되는 데 앞장서는 인재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몇 년 후 미국 대학에 진학하였고 대학 시절 동안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Korean Student Club, 세계에서 가장 큰 학생 단체인 AIESEC, 북한인권 학생단체 LiNK에서 리더 역할을 했고, 하버드 대학 주최 동아시아 포럼과 한중일 대학생 비즈니스 콘테스트, UN 대학 주최 Northeast Asia Forum 등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러한 활동들과 학업 성적을 인정받아 매년 동아시아학과의 한 명에게 주어지는 Excellent Student Award in East Asian Studies를 받았고 장학금 4000달러를 받기도 했다.

다양한 봉사 활동과 리더십, 단체 활동 들은 나의 세계관을 크게 넓혀 주었고, 특히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외국 기업이나 조직에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조정하여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팀워크 능력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가자, 멀고도 가까운 일본으로

대학 시절 일본과 중국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매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Boston Career Forum이라는 일본 취업박람회에 참가했다. 본래 해외에서 공부하는 일본 학생들을 채용하기 위해 열리는 박람회이지만, 외국계 회사의 경우 도쿄 이외에 홍콩,싱가포르 지사의 직원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시아 학생들이 많이 참가하기도 한다. BCF와 비슷한 형식으로 일본에서 열리는 취업박람회로는 Tokyo Caree rForum, MyNavi 등이 있는데, 국내 일본인 학생들을 위한 취업박람회이지만 일본에서 유학하거나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한국인 학생들이 이러한 박람회를 통해 일본 취업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취업 비자가 까다롭지 않고 한국과 사회, 문화, 지리적으로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언어 또한 비교적 단기간 내에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해외 취업을 원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일본 취업을 적극 권장하는 편이다.

BCF를 통해 미국계 투자은행의 동경 지사에 취직이 되어 일을 시작하고 얼마 후 금융 위기로 인해 회사의 파산 및 합병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게 되었다. 나의 불찰이 아닌 회사의 사정에 따른 해고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세계 금융 위기 가운데 직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대부분의 회사들은 채용을 멈춘 상태였고 헤드헌팅 회사들도 시장이 쉽게 회복되지 못할 거라면서 기다려 보라는 말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했지만 이왕 일본에 왔으니 자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일본어 능력시험 1급에 합격해 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공부에 매진하였다.

일본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게 될 무렵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을 통해 외국계 부동산 자산 운용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업무를 대부분 일본어로 하는 일이었으므로 일본어 구술 면접 이외에 일본 경제 신문 사설을 읽고 일본어로 나의 의견을 쓰는 논술 면접도 보았다. 11명의 면접관들과 반복되는 면접 끝에 결국 2009년 1분기 경제 한파 속에서 기적적으로 재취업에 성공하게 되었다. 일 경력도 얼마 되지 않고 일본어가 완벽하지 못한 외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취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일본어를 공부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감사하고 기뻤다.

또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일하게 된 회사에서의 첫날 각자 팀의 업무 내역을 브리핑하는 미팅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일본어로 진행되는 회사 미팅에 참석한 데다 생소한 부동산 용어들로 인해 대부분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업무에 익숙해지고 부동산 관련분야를 공부하면서 미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회사 동료들이나 외부인들과의 회의도 점차 원활해졌다. 내가 회사에서 했던 일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회사가 운용하는 대형 쇼핑몰과 오피스빌딩의 자산 및 포트폴리오 관리와 자산 마케팅이었다. 부동산이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고 가시성이 높아 업무는 흥미로웠지만, 나의 성향에 비추어 볼 때 장기적으로 일하고 싶은 분야는 아니었다. 나는 평소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 개선 문제나 가능성 있는 개인 혹은 조직의 발전과 성공을 도와주는 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을 국가나 지역적으로 스케일을 넓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과 접목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그러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국제기구 취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쪽 분야의 공부를하기로 결심하였다. 얼마 후 면접을 거쳐 일본 문부성에서 학비 전액과 생활비를 지원받아 영어로 진행되는 일본 대학원의 석사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석사 입학 후 개발 경제 관련 공부를 하며 일본 대학원과 연계된 프랑스 OECD 인턴십에 지원하여 Development Co-operation Directorate라는 개발 협력 부서에서 3개월간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지원한 해에는 나와 일본인 2명밖에 선발되지 않았는데 내가 선발된 주된 이유는 바로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OECD가 한국 정부와 그해 12월 부산에서 세계개발원조총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면서 한국인 인턴을 원했던 것이다. 반기문 유엔총장, 힐러리 미국 국방부 장관 및 여러 나라의 대통령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국제 개발의 수혜국에서 지원국이 된 최초의 국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은 한국과 국제 사회에 큰 의미가 있었다.

영국 정부 장학금과 유럽부흥개발은행 취업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나만의 전문 분야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금융 계통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국제 금융 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직 직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직원들이 MBA를 수료했다는 것을 알고, 영국 정부 장학금을 받아 MBA에 진학하게 되었다. 내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학업을 병행하는 가운데 관심 있는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자 했던 적극성과 도전 정신을 면접관들이 높게 평가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양한 국적과 경력의 학생들과 함께했던 다채로운 MBA 생활에서 특히 나의 취업과 연관이 되었던 경험은 독일, 스페인, 중국, 일본 출신 네 명의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중국의 한 중소은행을 컨설팅해 주었던 일이다. 중국의 금리자유화가 앞으로 은행에 미치게 될 영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젝트였는데, 한 달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업무 문화를 비롯해 중국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중소기업 컨설팅 경력을 눈여겨본 EBRD 인사 담당자의 추천으로 EBRD 중소기업 컨설팅 부서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인턴 업무는 EBRD가 지난 20년 동안 지원해 준 1만 5천 개 이상의 중소기업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부서를 홍보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한 독일인 동료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어 여러 국제기구에서 오랜 경력을 지닌 후보자들 틈에서 몇 개월간의 치열한 선발 과정을 거쳐 정직원이 되었다.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상사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만약, 한국정부에서 나의 인턴 비용을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이 또한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기회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고 노력해 주신 모든 앞선 세대 분들과 K-Move 정책을 통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도록 뒷받침해 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국인으로서 받아 온 많은 혜택들이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발전과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며 전진해 나갈 것이다.

출처: https://www.worldjob.or.kr/info/bbs/ovseaAdvnStry/view.do?menuId=1000000030&bbscttNo=13601&pageIndex=6&showItemListCount=10&orderByKey=&orderByType=&srchType=&srchTxt=&srchType2=&srchType3=&srchType4=&srchType5=&srchTxt2=&srchTxt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