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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구 취업 길잡이

 한국출신 UN 요원의 근무현장 소식(Newsweek 한국판)     bjlee20914    
세계를 무대로 뛰는 ‘국제 공무원’( Newsweek Special Report 한국판)
 
각자 담당 분야는 달라도 저마다 소속된 유엔기구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한국인 5명의 숨가쁜 생활을 들여다본다.
 
 
김세우(40)씨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중동·중앙아시아·동유럽 지역본부(이집트 카이로 소재)에서 지역 조정관으로 일했다. 그는 4년 전 아프가니스탄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탄알 자국이 무성한 건물, 질주하는 군용차량, 외국인이면 무조건 달려들어 손을 벌리는 코흘리개 소년들에서 천막을 치고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까지. 순간 한국전이 벌어질 때 우리도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김씨는 지난해 4월 휴가 때 따로 시간을 내 미 뉴욕 컬럼비아대 도서관을 뒤져 낡은 보고서 한 편을 발견했다. ‘1950년대 한국 낙동강 주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구호사업 보고서’였다. 순간 가슴 한구석에 애잔함과 뿌듯함이 함께 밀려왔다. WFP는 식량원조와 재난 지역에 긴급 구호식량을 공급해 주는 일을 담당하는 유엔기구다. 

지난해 10월 8일 파키스탄에서 리히터 규모 7.6의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역 조정관이었던 김씨는 첫 두 달 동안 주말도 없이 하루 최소한의 수면만으로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재민들의 구호에 필요한 식량을 긴급히 확보하려면 어쩔 수 없다. “먹을 것을 갈구하는 이재민들의 손길을 생각하면 잠시도 쉬기 힘들었다. 인접국에서 황급히 확보한 비스킷이 공수돼 이재민들에게 가장 먼저 배급됐다는 소식에 짓눌렸던 가슴이 터지는 듯했다”며 당시의 벅찬 순간을 돌이켰다. 

콕스 바자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이 있는 방글라데시의 아름다운 휴양지다. 그러나 그곳에서 차로 1∼2시간 떨어진 곳에 처참한 난민촌이 있다. 미안먀에서 정치적 박해를 피해 넘어온 소수민족의 생활터전이다. 콕스 바자에 있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에서 지역사회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채수은[30· 초급전문가(JPO) 7기]씨는 1주일에 3~4일은 오전 8시30분쯤 UNHCR이란 글자가 새겨진 흰색 랜드 크루저를 타고 사무실을 나선다. 

난민촌 방문이 목적이다. 현장 보조원과 통역을 대동한 채 난민들과 개별적으로 만나거나, 집단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여성·아동·청소년 등 난민촌 내 다양한 구성원들의 욕구를 파악해 이들에게 필요한 물적·정신적 도움을 제공하려는 기초 조사다. “세계 난민의 날인 지난 6월 20일엔 난민촌 내에서 갖가지 행사도 기획했다”고 말했다. 

채씨는 처음 닌민촌을 방문했을 때의 충격을 결코 잊지 못한다. 난민촌의 아이들은 외국인의 얼굴을 보려고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이들이 난민촌 밖의 삶을 전혀 모른다는 생각에 슬픔이 복받쳐 왔다.” 실제로 난민촌 안에는 놀이시설도 거의 없고, 방글라데시 정부가 난민촌 내 학교에 양질의 교사를 파견하는 경우도 없다. 

한번은 UNHCR이 난민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로 주려 하자 방글라데시 정부가 가로막았다. 이런 편의를 자꾸 제공하면 난민의 귀향만 늦출 뿐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오락과 휴식은 인간의 기본 권리인데도 다분히 이기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이런 편의조차 제공되지 못하는 현실에 서글픔을 느꼈다”고 채씨는 말했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10년 이상 난민생활을 해 오면서 이동할 권리도, 일할 권리도 없는 그들이 너무 가슴 아팠다.” 

김씨와 채씨는 모두 ‘국제 공무원’(International public servant)이다. 유엔이나 유엔 산하기관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유엔헌장 100조 규정에 따라 특정 국가를 대표하지 않고, 국제기구의 지시만 받으며, 오로지 자신이 속한 기구를 위해서만 일한다. 따라서 자국의 국익을 위해 일하는 외교관과 달리 국제사회의 공동선을 실현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2006년 1월 현재 한국인은 유엔 등 39개 국제기구에서 240명이 근무한다. 구체적으로 전문가(P)급 이상 직원은 유엔사무국 40명,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유엔 산하기구 22명, 국제노동기구(ILO) 등 유엔 전문기구 116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정부간 기구 62명이다. 꼼꼼히 들여暮만?유엔 등 국제기구 고위직에 진출했거나 현재 활동 중인 한국인은 꽤 있다.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의사 출신의 이 전 총장은 2003년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WHO의 최고 수장직에 올랐다. 그 외에도 외교통상부 국제경제담당 대사 출신의 김학수 박사는 2000년부터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 사무총장(유엔본부 사무차장급)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의 김두영 사무차장, 아시아유럽재단(ASEF)의 조원일 사무총장, 채이식 국제해사기구(IMO) 법률위원회 의장, 김재옥 국제표준화기구(ISO) 소비자정책위원회 의장 등도 있다. 

한국인의 유엔 고위직 진출은 자연스레 하위직 진출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2000년 7월 김학수 박사가 ESCAP 사무총장으로 부임하면서 한국인 직원이 2명에서 9명으로 대폭 늘었다”고 김 총장의 자문관으로 일하는 김성인씨는 전했다. 9명 중 하동우 박사와 유자경 박사는 김 총장의 도움으로 승진해 지금은 각각 교통국과 정보통신국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국제 공무원이 누리는 특권은 거의 외교관 수준이다. 예컨대 공적인 자격으로 행한 구두·서면진술과 일체의 행동엔 일종의 면책특권이 부여되며 유엔에서 받은 급료와 수당은 세금이 면제된다. 배우자와 부양가족에게도 어느 나라나 출입국을 제한하지 못하고 외국인 등록법을 적용하지 못한다. 국제 위기 발생 시엔 유엔 직원과 배우자·부양가족에게는 외교사절과 같은 수준의 귀국 편의가 제공된다. 

대우도 후하다. 전문직(P급) 이상일 경우 급여체계는 기본급여와 ‘지역조정급’(post adjustment)에 각종 수당을 포함해 11만 달러(1억여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5년만 근무하면 55세부터 연금을 받을 자격이 생기며 연봉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매년 자동적으로 인상된다. 

그뿐이 아니다. 1년만 근무해도 해마다 6주간의 휴가가 주어지며 2년마다 한 번씩 배우자와 피부양 자녀를 동반해 고국에 다녀오도록 항공권이 무료로 제공된다. 모두 최고 수준의 직원을 확보하려고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고민 끝에 정한 원칙 [당시 급여위원장의 이름을 따 ‘노블메이어 원칙’(Nobleamaire Principle)이라고 부름] 덕분이다. 

채씨는 봉급 액수를 밝히지 않겠다면서도 “연봉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오지에서 일하는 채씨 같은 경우를 감안해 유엔은 현지 생활비와 임무의 난이도를 동시에 고려한다. 예컨대 채씨가 제네바 본부에서 일할 당시엔 ‘곤경수당’이 거의 없는 대신 비싼 생활비를 보전하는 지역조정급이 꽤 높았고, 방글라데시에서 근무하는 지금은 거꾸로 지역조정급은 적은 대신 ‘곤경수당’이 많다. 결국 현지 사정을 감안한 공평한 봉급체계인 셈이다. 

급여체계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오는 반작용일까. 뉴욕 유엔사무국 내 평화유지국(DPKO)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노수미[34·유엔국별 경쟁시험(NCRE) 건축분야 합격자]씨는 “30대 전문직으로선 동급 기준에 비해 대우가 좋지만 급여만 따진다면 사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며 “이는 보너스나 인센티브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업을 가진 여성은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노씨의 경우 남편은 영국에서, 자신은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서 사는 ‘이산가족’이다. 

김세우씨가 유엔기구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96년 대학원 졸업 후 외교통상부에서 한국 최초로 실시한 JPO 선발시험을 통해서다. 사실 5명만 뽑은 그 시험에서 6등을 차지해 탈락했지만 “당시 한국 주재 유엔대표부 겸 유엔개발계획(UNDP) 사무소에서 나를 발탁해 비록 국내이긴 했어도 유엔기구에 첫발을 내디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가졌던 세계인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한국엔 국제기구 사무소가 일곱 군데 있다. UNDP·UNHCR·WHO·국제통화기금(IMF)·국제금융공사(IFC)·국제이주기구(IOM) 사무소와 유엔공업개발기구-투자진흥사무소(UNIDO-IPS)다. 모두 유엔 산하·전문기구의 한국 지소 성격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엔사무처 내 경제사회국(DESA)이 주관하고 행정자치부가 지원하는 ‘유엔 거버넌스센터’가 설립됐다. 

한국 최초로 유엔 ‘프로젝트 본부’가 들어선 셈이다(유엔사무국은 최근 특정 주제에 관해 지역·기능별로 특화된 전문기구를 설립하는 추세다). 여기서 거버넌스란 정부·시장·시민사회가 상호작용을 통해 정치·행정·사회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 협치(協治)를 가리킨다. 센터 설립은 참여정부를 표방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과 전자정부 실현 등을 유엔이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유엔 거버넌스센터는 20여 명으로 구성되며 각국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증진하는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첫 번째 국제행사로 9월 6일부터 사흘간 ‘아시아지역 정부 혁신 포럼’을 열며 국내외 고위관료와 학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센터의 최지호 홍보담당관은 포럼에 맞춰 “안토니오 오캄포 유엔사무차장이 서울에 오며 센터의 공식 출범식도 그 때 연다”고 밝혔다. 한편 태국에는 ESCAP 본부(방콕)를 포함해 국제기구 사무소가 26개나 있다. 

유엔 분담금 2위인 일본도 프로젝트 본부 성격의 유엔 지역개발센터(UNCRD) 외에 국제연합대학(UNU) 본부를 도쿄(東京)에 둔다. 특히 일본은 21세기가 지적소유권을 둘러싼 국가갈등의 시대가 된다고 내다보고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사무총장 진출에 부심하고 있다. 미 노던일리노이대에서 국제기구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재영 경상대 정치행정학부 교수는 “국제기구에 많은 한국인을 진출시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어느 기구를 집중 공략할지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WHO에서 일하는 김효정(27·JPO 8기)씨는 평균 연령이 50세 이상인 조직 내에서 가장 나이 어린 직원으로 통한다(WHO 직원의 평균 연령이 높은 이유는 그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기 때문이다. JPO 출신은 예외). WHO의 보건위기대응국(HAC)에서 일하는 김씨는 긴급상황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전문적인 훈련과 지침을 제공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일종의 ‘훈련교관’인 셈이다. 

하지만 유엔기구 안에는 인도주의에 기반한 각종 기구의 훈련을 총괄하는 기구가 없기 때문에 WFP·UNHCR·UNICEF 등과도 긴밀히 협조하는 ‘영광’도 동시에 누린다. 그녀가 속한 팀은 현재 다른 부서나 유엔 내 다른 기관들과 협조해 열 가지 훈련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현장 요원들의 교육 욕구를 파악해 커리큘럼을 짜고 워크숍을 열어 그 결과를 평가하는 일까지 그녀의 몫이다. “비정부기구(NGO)나 정부간기구(IGO)뿐 아니라 유엔 내 대부분의 인도주의 기관들과 함께 협력하는 일은 지극히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김씨는 자부했다. 

내근직인 김씨는 케냐 최대의 항구도시 몸바사에서 워크숍을 열었을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WH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하다 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해 인류학의 ‘발상지’ 케냐로 갔다는 흥분 때문만이 아니었다. 필드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아, 내가 하는 일이 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구나” 하고 실감했기 때문이다. 

현장 방문을 통해 그녀는 “훈련 프로그램의 개발·시험·실시·감독·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 김씨는 “젊은 유엔 직원들에게 완벽한 본보기가 됐으며 우리도 그런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분이었다”며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의 죽음을 대단히 아쉬워했다. 

유엔기구에는 ‘후방’에서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도 많다. 뉴욕 유엔본부 내 평화유지국(DPKO)에서 일하는 노수미씨도 그중 한 명이다. 노씨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필드 현장 보고서’(Situation Report of DPKO missions)를 읽으면서 시작된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주거시설(예컨대 텐트·가건물·창고시설 등)과 각종 건축자재·군수용품의 공급 업무를 꼼꼼히 챙긴다. 

공급 계획의 모든 내용은 본부 내 계약위원회의 최종심의를 통과해야 하고, 신규 계약이나 재계약이 필요하면 위원회에 직접 나가 브리핑도 해야 한다. 게다가 각 평화유지군(PKO)들과 e-메일·팩스·공문에다 화상회의를 통해 현지 상황 파악과 전달을 하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노씨가 근무하는 층에는 30여개국 출신 50여 명이 모여 일한다. 외부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하루에 50개국 출신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리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한다 해도 유엔처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상대하긴 어렵다”고 노씨는 말했다. 

자연히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섞여 살다 보니 세계 각국의 문제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고 느껴진단다. “예전엔 소말리아나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먼 이웃의 정치적 문제였지만 요즘은 아무리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도 업무적으로 연결되는 ‘우리네 사건’이 됐다”고 노씨는 말했다. 

노씨의 전공은 건축이고 예전엔 한 사기업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그때는 유엔에 건축 관련 부서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2002년 우연히 유엔사무국이 유엔국별 경쟁시험(NCRE)을 통해 전문직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고 건축직에 지원했다(당시 건축직 외에도 경제·재정·정보기술·사서·홍보·통계직을 뽑았다).

시험은 1차 서류전형, 2차 필기시험(논리력·작문력·국제관계 지식을 측정하는 일반논문 4시간과 응시분야 관련 능력을 집중 평가하는 전문논문 4시간), 3차 면접(필기시험 합격자에 한해 뉴욕에서 실시)이었다. 2002년 말 최종 합격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11월이 돼서야 유엔본부 내 DPKO의 연락을 받고 다시 면접과 해당 업무 작문 시험을 거쳤다. 정작 뉴욕본부에서 일을 시작한 때는 2004년 7월이었다. 최종 합격에서 뉴욕본부 발령까지 거의 2년이 걸렸다는 말이다. 

그 복잡한 시험을 노씨는 어떻게 준비했을까. “ ‘유엔 고시’는 갑자기 준비해서 되는 시험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노씨는 말했다. 일단 영어 실력이 중요하고 본인의 전공 분야 전문 지식과 실무 경험은 필수다. 사실 영어에 관한 한 그녀는 특별히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고교와 대학을 졸업했으며 이미 고교 때 유엔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잠시 외교관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결국 진로는 건축으로 틀었지만 어쨌건 성장 과정에서 여러 민족과 섞여 살았고, “어떻게 하면 건축을 배경으로 국제감각을 살려 진로를 바꿀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런 국제적 배경은 로마에 본부를 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산림부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권지민(37·P-3급)씨도 예외가 아니다. 

유엔 산하기구인 FAO에서 2년 넘게 일한 그녀도 외교관 자녀로 여러 나라에서 국제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다. 95년 유엔사무국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국제기구에 첫발을 디딘 그녀는 “유엔에 취직하려고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지만, 항상 국제정세에 관심을 기울이고 전문성을 쌓으며 유엔에서 일할 기회를 노렸다”고 말했다. 

최근엔 ‘토종’들 간에도 JPO 시험을 통한 국제기구 진출 바람이 거세다. 지난달 말 카이로 생활을 마치고 WFP 방콕 지역본부로 옮긴 김세우씨나 WFP 라오스 사무소에서 일하는 임형준(42·JPO 5기)씨처럼 국내에서 공부해 국제기구 진출에 성공한 사람들이 좋은 예다. 김씨는 “유엔 진출을 희망하는 분들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며 줄기찬 노력을 당부했다. 

한편 고1 때부터 펜팔을 하며 미국 친구를 부산 집으로까지 찾아오게 한 임씨는 다른 공부는 몰라도 국어·영어·독어 등 ‘어’자가 들어간 공부는 잘했다는 자칭 ‘언어의 귀재’다(영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에 루마니아어까지 구사한다). 

임씨에겐 원대한 인류애가 있었다. 그 꿈을 실현하겠다고 배낭 하나 메고 전 세계 76개국을 돌아다녔다. 임씨는 특히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순수 토종’ 후배들에게 다섯 가지 조건 중 적어도 네 가지는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실무’가 가능한 영어 실력을 쌓아라(회의나 토론에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밝히고, 각종 문서를 별 어려움 없이 작성해야 한다), 둘째 자기만의 전문분야와 실무 능력을 갖춰라(적성을 무시한 지원은 하지 마라), 셋째 열린 머리, 열린 자세를 가져라(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능력이 중요하다), 넷째 제2 외국어는 필수다(사실 영어는 기본일 뿐이다), 다섯째 사명감을 가져라(상상을 초월하는 업무강도와 온갖 어려운 상황을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엔기구 진출에 여성 차별은 없을까. 큰 걱정은 안 해도 좋다. 유엔헌장 8조엔 “유엔은 그 주요기관 및 보조기관에 남녀가 어떤 지위에서건 평등하게 참여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리고 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회의를 계기로 동등한 성비가 특히 전문직 이상의 상위직에서 구현돼 가는 추세다. 그렇지만 아직 남녀 성비가 균등하지는 않다. 2004년 6월 30일 현재 유엔사무국 직원 중 지리적 배분 대상이 되는 전문직의 경우 여성 비율은 42.3%다. 

하지만 이 비율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낮아진다. 예컨대 P-2(사무관급, 52.1%), P-3(서기관급, 48.8%), P-4(계장 또는 과장급, 39.5%), P-5(과장 또는 심의관급, 34.2%), D-1(부국장급, 39.4%), D-2(국장급, 33.8%), ASG(사무차장보, 29.4%), USG(사무차장, 22.7%)의 추세다. 따라서 여성의 이 같은 ‘과소 분포’를 감안하면 고용·승진 기회가 생겼을 때 동일한 조건일 경우 여성이 발탁될 가능성이 크다. 단 ASG·USG·SG(사무총장)는 모두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자리이므로 전문직으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단계는 D-2급이다. 

채수은씨는 여성 지원자들이 외국어로 의사를 소통하는 능력뿐 아니라 유엔이 벌이는 사업에 관한 깊은 지식과 국제 문제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쌓으라고 주문했다. 김효정씨는 자신이 원하는 유엔기구로 들어오기 전에 인턴십을 통해 유엔 문화를 미리 경험하면 유리하다며 “비단 한국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세계적 시각에서 세계적 문제를 이해하는 일이 필수”라고 말했다. 

똑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상주의로 포장된 유엔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유엔에 들어와 보면 현실은 기대 이상으로 가혹하다. 너무 정치적이고, 느리며, 관료주의적이다. 민간부문이나 NGO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김세우씨는“본인이 원하는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학식과 경험을 갖추고 영어 구사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회는 있다”고 전제하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유엔 진출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진출 후 소속 기구에서 요구되는 제반 업무 능력을 끊임없이 연마해 기구 내에서 입지를 확보·발전시키는 일이다.” 노수미씨도 경계의 말을 덧붙였다. 

“국제기구에 진출하고 싶다면 어떤 경험이든 ‘남이 하니까 나도 하자’는 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창적인 계획과 포부를 갖고 새로운 문화에 잘 적응하는 도전정신과 생존능력이 중요하다.” 어쩌면 그런 능력은 그녀에게 이미 타고난 듯했다. 2002년 뉴욕에서 최종 면접시험을 볼 때의 일이다. 6명의 면접관 중 한 명이 그녀에게 “귀하는 유동성(mobility)이란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순간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필기시험 당시 임신 9개월째였고, 주거지인 싱가포르에서 시험장인 방콕까지 비행기로 날아가 뱃속의 아이와 함께 이틀 동안 8시간씩 시험을 치렀으니 이 정도면 비단 나뿐 아니라 아이까지 ‘mobility’를 타고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순간 면접실은 웃음 바다가 됐다. 얼마 후 그녀의 집으로 발령장이 날아들었다. 순발력과 유머는 유엔에서도 통한다. 

(이 글은 세계 각지의 유엔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 다섯 명과 주고받은 e-메일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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