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성공 수기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산다는 것 (1)

by  | Jul 6, 2014 | Software Engineer | 68 comments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12년 12월호에 게재된 필자의 글입니다. 당시 분량의 제한으로 내용들이 누락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들을 다시 추가하고 수정해서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12/12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12년 12월호 게재기사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천국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산다는 것(1)

고된 프로젝트 일정으로 야근을 반복하던 국내에서의 개발자의 삶은 필자로 하여금 개발자의 꿈을 포기하게 했다. 그 후 전혀 다른 진로를 모색해보기도 했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매력은 필자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고 항상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길에 남다른 연민을 느끼게 했다. 그러던 중 미국 유학을 통해 전산학을 공부하고 미국 현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취업할 것을 결심하게 됐다. 새로운 전공과 영어라는 언어적 문제 그리고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취업을 준비하면서 여러 험난한 과정을 겪었지만 결국 바라던 미국 기업에 취업해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이 글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천국’이라는 미국으로의 진출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필자가 미국 현지 취업을 준비하며 겪은 일을 이야기해 본다.


이승훈 biosuefi@gmail.com | 미국 예일대학교 전산학과 석사 졸업 후, 현재 텍사스 델 컴퓨터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전자공학과 전산학을 전공하고 하드웨어 및 펌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델 컴퓨터의 바이오스와 UEFI를 개발하고 있다. 아직 미국 생활이 낯설고 매일이 도전의 나날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는 기쁨에 차 생활하고 있다.


고된 엔지니어의 삶

2006년 1월의 마지막 날. 병역특례를 마치고 본인이 한국에서 개발자로의 내 경력에 종지부를 찍은 날이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전자키트를 납땜을 해가며 만들고, Turbo C로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서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대학교에서 전자공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하면서 컴퓨터와 더욱 깊은 인연을 쌓아나가게 되었다. KAIST 재학 시절, 창업멤버로 일했던 한 벤처기업에서의 경험은 나의 관심과 재능이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병역특례에서 경험했던 개발자로서의 삶은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끊임없이 야근을 하고 고된 프로젝트 일정에 지쳐 있던 나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과로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병원에서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게 되었다. 또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때로는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면서 받는 월급이 과외 몇 개를 하면서 버는 돈보다 적은 것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많은 갈등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3년간의 병역특례가 끝나자마자 나는 그 고된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경영학 공부 그리고 미국 유학

앞으로 어떤 것을 하면서 살아야 될지 고민이 많았다. 회사 생활을 끝내면서 대학 시절 벤처기업에 근무할 때 관심 있었던 경영학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 서울대 경영학과에 학사 편입 원서를 넣었는데 서류 전형과 전공 시험을 통과하고, 감사하게도 최종 면접까지 통과해 새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곳에서 2년 반 동안의 시간 동안 경영학을 공부하며 이전과는 완전 다른 커리어를 꿈꾸게 되었다. 졸업 즈음에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와 투자은행에 계속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마음속에는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지 갈등이 생기고 있었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미국 유학을 꿈꾸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라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해보고 싶은 열망에 그 땅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KAIST 를 졸업하고 한 때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바쁜 회사 생활과 여러 개인적 사정들이 생겨서 미국 유학의 꿈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경영대를 졸업한 후 잘되어서 외국계 컨설팅사 혹은 투자 은행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예전부터 꿈꾸고 있던 이 미국 유학의 꿈은 또 몇 년간 접어야 되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는데 두번째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나이가 벌써 서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MBA를 준비했다. TOEFL과 미국 경영대 진학을 위한 시험인 GMAT을 쳐서 지원 가능한 성적을 받고 미국 탑 10 스쿨의 MBA프로그램에 원서를 넣었다. 그러던 중 서브 프라임 위기가 터지더니 미국 경영대 비즈니스 스쿨의 MBA지원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일년 이상 열심히 준비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회사에서 대단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영과 전자공학을 공부했다는 것 밖에는 별다른 점이 없는 내가 지원한 모든 학교에서 리젝을 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해가 되고나서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가장 최근에 공부한 경영학을 미국에서 좀 더 공부해보겠다는 생각에 경영학 박사 과정에 지원하기로 했다. 조지워싱턴 대학교의 한 교수님께서 IT와 경영학을 공부한 나의 특이한 이력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이 학교에 지원하기로 했다.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교수님 4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좋은 인상을 받으셨는지 모두 추천을 해주셨다. 학과 추천도 받고 이제 마지막 관문인 그 학교의 입학처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최종 관문에서 떨어져버렸다.

세상의 모든 시계가 멈춘 듯했다. 2년 동안 내가 노력한 것들이 산산조각이 되어 공중에 날아가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야 되는지 많은 혼란 속에서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고,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진로를 선택하기 전에 마지막 1년만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물러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드시 이 관문을 뚫어야 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보았다. IT업계를 떠난지 4년이 넘었지만 누구보다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고, 또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던 나였다. 그리고 경영학도 배운 지금으로서는 IT와 경영학을 접목한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도 가능한 진로중의 하나였다. 새로 마음을 다잡고 내 인생의 도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국 대학원 진학을 위한 시험인 GRE를 보려고 일본을 몇 번 왔다갔다하고 필요한 원서비, 시험비, 그리고 생활비를 벌려고 과외 7~8개를 병행하면서 30개가 넘는 미국 대학원의 전산학과에 지원하는 동시에 비즈니스 스쿨의 MIS프로그램에도 지원하기로 했다.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들 중 누구에게 물어봐도 나만큼 많은 학교에 지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절박했기에 이제는 실패하면 안되기에 나는 최대한의 가능성을 위해서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예일(Y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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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이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시절 내 삶에 대해서 정말 최선을 다하면서 하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0년 2월, 가장 먼저 연락을 받은 곳이 미국 아이비리그 학교 중 하버드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대학교의 하나인 예일(Yale)대학교였다. 나중에 예일의 학생 서비스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던 Linda에게 물어보니 그 해에 CS 석박사 프로그램에 280명이 지원해서 19명이 전산학 석사 입학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 시점을 시작으로 하나씩 어드미션 소식과 리젝 소식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Computer Science 전공 석사로 최종 합격 한 곳은 University of Michigan(Ann Arbor)Johns HopkinsUC San DiegoUC IrvineUC Santa Barbara 그리고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MIS프로그램이 특히 유명한 University of Arizona의 Elller 비즈니스 스쿨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학교 선택을 하면서 앞으로의 진로와 연계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석사 졸업을 하고 미국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으니 비즈니스 스쿨보다는 외국인들이 좀 더 일자리를 찾기 쉽고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않아도 취업 경쟁력이 있는 전산학과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전산학에 있어서는 전공순위가 특히 높은 University of Michigan과 학교 명성이 높은 Yale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했었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Yale을 선택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치열했던 취업 준비와 학업

예일 대학교가 있는 코네티컷 주의 뉴헤이븐(New Haven)은 자그마한 유럽풍의 대학 도시이다. 낭만적인 곳이기도 하지만 밤에는 총소리도 간간히 들리고 어두워지면 혼자 다녀서는 절대 안 되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자리잡고 아내와 함께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 유학 올 때는 예일의 전산학과 석사 과정을 2년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학 후 학과 정보를 자세히 읽어보니 1년에서 4년까지 선택할 수 있었다. 졸업 시기를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조정할 수 있지만 졸업하기 위해서는 최소 학점 요건이 있었다. 예일에서의 전산학과 대학원의 학점은 한국처럼 A, B, C로 나누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Honor, High Pass, Pass, Fail로 나누어서 주는데 졸업하려면 평균 High Pass, 그리고 최소한 1개의 Honor를 받은 수업이 있어야 한다. 예일의 대학원에서는 보통 열심히 해서 받는 학점이 Pass이다. High Pass를 받으려고 해도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되고 Honor를 받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첫 학기가 지나고 Honor를 하나도 받지 못했던 나로서는 둘째 학기에는 졸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더 노력해야 했다. 정말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다시 없을 정도로 하루 2~3시간을 자면서 숙제와 프로젝트, 그리고 시험을 준비했었다. 학비도 비싸고 의료보험도 너무나 비쌌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학위를 끝내기 위해서 1년 후 졸업을 목표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취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온 이상 직장을 찾는 것도 절대 게을리 할 수 없었다. 2010년 10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거의 8개월 동안의 시간 동안 계속 레쥬메를 고치고, 커버레터를 쓰고, 프로그래밍 인터뷰와 전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학업에 집중했다. 학기 중에는 수시로 전화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가 와서 어떤 날은 4~5시간을 계속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보내는 날도 꽤 있었다. 나중에 다 세어보니 회사에 지원서를 보낸 것만 1300여개 정도였고, 전화 인터뷰는 70~80개 정도 봤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전화 인터뷰가 너무 어렵고 질문을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많은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떤 질문이 나올지 금방 예상이 되었고 어떤 답변을 해야 되는지도 점점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확실히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겨서 여유롭게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프로그래밍 인터뷰도 배경 지식이 많이 없어 처음에 고생했던 분야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한국에서 일하기는 했었지만 거의 5년 전의 일이었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해서 알고리즘과 데이터 구조 같이 전산학에서 중요한 과목들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일대 전산학과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고 부족한 과목들은 청강을 하면서 필요한 지식들을 쌓아갔다. 그리고 전공에 대한 자신감도 점점 쌓여갔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이 있다면 바로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문제였다. 이 OPT제도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졸업하면 일정기간동안 미국에서 일할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졸업 전이나 후에 OPT를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에 유학와서 학위를 받은 다음에 딱 한번만 신청할 수 있다. 본인은 졸업이 불투명하다보니 OPT를 신청해야 될지도 많은 고민거리였다. 만일 OPT를 신청했는데 만에 하나 마지막 학기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졸업이 되지 않으면 신청한 OPT에도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졸업 2주 전에 뜬 모든 성적에서 졸업 요건을 충족하게 되어 OPT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OPT를 신청하고 나서도 고려할 사항들이 많았다. 졸업하고 나서OPT가 시작된 후 90일이내에 미국 내에서 직장을 찾지 못할 경우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OPT를 신청하고 계속 직장을 알아보면서도 마음이 계속 조급해져만 갔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LSI, 그리고 델(Dell)

처음으로 인터뷰 초청을 받은 곳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였다. 예일대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취업설명회를 열었는데 전산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봐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로 온사이트 인터뷰를 위해 초청하곤 했었다. 2010년 가을학기 때 설명회를 왔을 때는 프로그래밍 인터뷰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가서 알고리즘 관련 질문에 대답을 잘 하지 못해 온사이트 인터뷰 초청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1년 봄학기 때는 꽤 오랫동안 프로그래밍 인터뷰를 준비한 덕분에 학교에 온 면접관의 질문에 모두 답변을 했고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는 워싱턴 주의 레드몬드(Redmond)라는 도시로 온사이트 인터뷰 초청을 받았다.

학교의 봄방학 때를 맞추어서 온사이트 인터뷰를 보기 위해 새벽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인터뷰 전날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파티를 주최했었는데 다음날 혹시나 정신이 흐트러질까봐 가지 않았다. 프로그래밍 인터뷰에서 합격 불합격의 많은 부분이 결정이 나기 때문에 알고리즘과 데이터 구조 부분을 정리하고 예상 질문과 답변을 다시 상기하며 인터뷰 전날밤을 보냈다.

드디어 결전의 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인터뷰를 보는 사람들에게 형형색색의 네온 사인으로 내부가 꾸며진 멋진 버스를 보내주었다. 15분 후 본사의 한 건물에 들어가서 기다리는데 주위를 보니 인터뷰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긴장한 구석이 완연했다. 인터뷰는 50분씩 4번 보는데 모두 프로그래밍 인터뷰였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개발자 모두 개인 방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각각의 인터뷰 때 면접관이 자기 방에 데려가서 인터뷰를 보곤 했었다.

첫번째 엔지니어의 방에서는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때까지도 영어가 서툴렀던 나는 질문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번 다시 물어보았다. 질문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름의 데이터 구조를 세우고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큰 어필을 준 것 같지는 않았다. 두번째 엔지니어의 방에서는Linked List안에서 Cycle의 여부를 인지하는 문제를 먼저 제시하고 점점 조건들을 추가해가며 각각Pseudo 코드를 작성할 것을 요구받았다. 1시간동안 엔지니어와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코드를 화이트 보드에 썼고 마지막에는 “You are correct.”라는 말도 들었다. 조금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번째 방에서는 매니저인 면접관이 종이와 연필 하나를 주더니 자기 요구사항에 맞게 Tree를 만들고 Depth-first search와 Breath-first search에 대한 여러 사항들을 묻더니 자기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는 알고리즘을 구현할 것을 주문했다. 여러 시도를 하고 토론을 하다 보니 또 1시간이 지나서 그 방을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 방에서는 주어진 검색에 대한 알고리즘을 Pseudo 코드로 제시하고, 그 후에는 내가 작성한 Recursive로 되어 있는 코드를 Iterative 바꾸면서 두 코드에 대한 장단점을 설명할 것을 요구 받았다. 이 부분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부분이라서 답변도 꽤 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모든 인터뷰가 끝났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그 날 인터뷰를 본 사람들은 모두 한 방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들이 그 사람을 데리고 사라지게 된다. 내 이름이 불리고 한 여직원이 나를 안내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다가 “Unfortunately…”를 들었을 때 그 결과를 직감할 수 있었다. 아쉽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만남은 여기까지였다. 그날 같이 면접을 본 사람은 15명 정도였고, 합격한 사람은 2명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 학기에 열심히 전력투구를 한 덕에 좋은 성적을 받아 예일에서 1년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즈음에 LSI라는 네트워크와 스토리지 관련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아서 2명의 엔지니어와 전화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전화 인터뷰를 괜찮게 보았는지 그 후에 온사이트 인터뷰 초청을 받아서 펜실베니아로 가게 되었다. 5명과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때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프로그래밍 문제도 대부분 답변을 했고 편한 마음으로 거의 6시간의 인터뷰를 마쳤다. 하지만 약 3주 후 당시 그 회사에 내부 구조 조정이 생겨 내부 인력을 우선 채용을 하는 바람에 팀 내에서 외부 인력을 더 뽑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매니저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 날 인터뷰를 했던 다른 분으로부터는 팀에서는 나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는데 갑자기 내부 리소스에서 인력을 뽑아야 되었다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다음 도전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었다.

세번째 인터뷰 요청을 받은 곳이 텍사스에 있는 델(Dell) 컴퓨터였다. 델의 웹사이트를 통해 몇몇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포지션에 지원했었는데 몇 달 후 갑자기 델에서 전화가 와서 바이오스(BIOS) 엔지니어로 면접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학부 때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석사 때 전산학을 공부한 내 이력을 눈여겨본 것이었다. 나는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내 취업 자격을 주는 OPT제도는 졸업 직후 OPT를 시작한지 90일 내로 미국 내에서 취업을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직장을 찾아야 했었다. 델의 엔지니어와 전화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며칠 뒤에 텍사스로 가는 비행기표가 도착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텍사스로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텍사스에 도착하고 라운드락(Round Rock)이라는 도시에 있는 델 본사에서 면접을 보았다. 6시간 동안 6명과 인터뷰를 보았다. 기본적으로 C/C++에 대한 개념 문제부터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프리젠테이션 할 것을 요구받았다. 컴퓨터의 부팅 과정과 바이오스의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과 더불어 조직에서 여러 상황들에 대처능력을 예측하는 Behavior Questions에 대한 답변도 요구받았다. 6시간의 긴장된 순간들이 끝나고 호텔에 돌아와 쉬면서 그 날은 정말 오랜만에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3주 후 델의 2개 팀으로부터 오퍼를 받았다. 연봉 협상을 하고 정식 잡 오퍼 레터가 왔는데 기한이 일주일이었다. 당시 같이 진행하고 있던 구글 인터뷰는 다음 단계가 결정나려면 6주 정도까지 걸릴 수 있다는 말에 프로세스를 중지하고 델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텍사스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란?

취업 관련 사이트 CareerCast.com은 2012년 최고의 직업과 최악의 직업을 선정하는 가운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최고의 직업군으로 선정하였다. 평균 소득, 근무 환경, 스트레스, 육체 노동의 강도, 그리고 취업 전망을 합산해서 다른 직업들과 비교한 결과 미국에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며 또한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직업으로 선정된 것이다.

델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제일 먼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일과 가정생활과의 균형이었다. 회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미국 회사는 9-to-5를 기준으로 근무시간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IT기업의 경우, 그리고 소프트웨어 직종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근무 시간이라는 것이 조금 더 느슨해지고 개인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델에서도 본인이 일하면서 근무 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은 없다. 본인은 보통 9시에 집에서 차를 타고 출발해 9시 20분 정도에 회사에 도착해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보통 저녁 5시와 6시 사이에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생활을 거의 1년 동안 반복해왔다. 물론 가끔 일이 바쁠 때는 저녁에 늦게까지 일할 때도 있고 주말에 출근할 때도 있다. 사람마다 집중하는 시간이 다른 만큼 어떤 사람은 아침 7시정도부터 업무를 시작해 빨리 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 늦게 와서 남들보다 늦게 퇴근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육아 혹은 병원 진료 관계로 늦거나 회사에 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에는 매니저에게 연락하면 대부분 이해해 주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본인의 경우 첫 해에 2주의 휴가가 주어졌는데 개인적 용무가 생긴다면 2주의 시간을 더 쓸 수 있었다(물론 매니저와 얘기가 되어야 한다). 이 참에 회사에서 휴가 외에 공식적으로 주는 휴일을 세어보니 11일이 더 있었다. 한국처럼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글래스도어(www.glassdoor.com)라는 웹사이트가 있다. 여기에서는 특정 회사의 특정 직군에 속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사이트이다. 가장 대표적인 구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연봉을 검색해보면 입사 1년 이내의 경우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 10만불 정도를 받고 일한다는 것을 글래스도어 웹사이트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연봉은 여기 사이트에 구글에 근무한다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것이므로 100% 신빙성이 있지는 않으나 대충 어느 정도 되는지 짐작해 보는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Glassdoor.com을 통해서 본 산호세에 근무하는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연봉(1년차 이내)

Glassdoor.com을 통해서 본 산호세에 근무하는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연봉(1년차 이내)

구글의 경우는 가장 잘 나가는 IT기업이기 때문에 연봉 수준이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이다. 다른 IT 대기업은 어떠할까? 인터넷에서 Fortune 500 리스트에 있는 기업 중 HP, Intel, Amazon.com같은 유명한 기업들을 골라서 글래스도어 사이트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연봉이 어떤지 한번 알아보자. 사람마다 직종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미국에서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는지 알 수 있게 대충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제 한국의 경우는 어떤지 한번 생각해보자. 한 때 한국의 벤처 신화의 중심에 있었던 IT분야의 엔지니어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신문 기사를 통해 그리고 현직에 일하셨던 분들은 그 생활이 어떤지 알고 계실 것이다. 회사마다 그리고 개발 직종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야근과 주말 근무를 감당해가며 빡빡한 개발 일정을 소화하느라 가정과 가족은 뒷전이 되기 일쑤였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개발자들만의 경우가 아닐 것이다. Forbes의 “The World’s Hardest-Working Countries” 기사를 보게 된다면 그 해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OECD의 “Average annual hours actually worked per worker” 통계를 보더라도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인의 연간 평균 근로 시간은 약 2400~2500시간으로35개 국가중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고 2008년부터는 멕시코에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통계는 어느 정도 복지 수준이 잘 되어 있는 대기업과 평균을 낸 것이니 처우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중소기업의 경우 연간 근무 시간이 3000시간을 넘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은 서울에서 개발자로 근무하였는데 강남에 있는 회사를 가려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근무시간에 맞추어 가기 위해 사람들로 붐비던 지하철을 타야만 했다. 아침에 지하철 입구에서 파는 토스트로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은 회사 혹은 회사 근처에서 다 해결하고 그 날도 야근을 하면서 코딩을 하고 대략 8시~11시쯤에 회사에서 퇴근 했었다. 누군가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개발자들이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생활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집에 오면 깜깜한 밤이고 몸은 몸대로 피곤에 절어서 야식 하나를 시켜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드는 그런 생활을 3년 넘게 하니 내 생활이라는 것을 잘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싱글 일 때는 이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도저히 이 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이 길을 포기했던 것 같다.

OECD국가들의 평균 근로 시간 - 한국의 살인적인 근무시간을 보여준다 (출처: OECD.StatExtracts)

OECD국가들의 평균 근로 시간 – 한국의 살인적인 근무시간을 보여준다 (출처: OECD.StatExtracts)

델에 입사를 하고 일을 시작했을 때 발견했던 신기한 사실이 있다. 누가 봐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인데 아직도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분이 전체 서버 파트의 모임에서 축하를 받았는데 20년을 넘게 델에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같이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보면 10년에서 20년 가까이 회사에서 근속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텍사스가 실리콘밸리같이 인력 유입이 많지 않은 곳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엔지니어의 삶에 만족을 하고 있었다. 한번은 어떤 팀에서 매니저 자리가 공석이 되어서 내부 엔지니어 중에서 매니저를 뽑으려고 했는데 아무도 매니저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곤란해 진 적이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분명 한국이라면 너도 나도 매니저를 하려고 했을 것인데, 참 이상했다. 엔지니어를 하다가 관리 직종으로 올라가는 한국 회사의 특성 상 매니저가 되지 않으면 승진도 연봉도 정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회사에서는 다르다. 평생 엔지니어의 길을 고수하면서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충분히 회사에서 인정받고 금전전 보상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일에서 전산학으로 석사를 마칠 시점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도 졸업 후 직장을 찾으러 동분서주하며 인터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특이했던 사항이 있다면 석사로 입학한 친구들 중에 미국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산학과 석사 동기들은 중국, 인도, 한국에서 유학 온 13명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대부분이 미국에 처음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졸업 후에는 이 친구들이 미국의 내노라하는 대기업에 모두 취업이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자의로 본토로 돌아간 사람들은 제외하였다). 지금도 페이스북으로 가끔 연락하고 있지만 그 친구들이 간 회사를 보면 구글(Google), 오라클(Oracle), 뱅크 오브 어메리카(Bank of America), 블룸버그(Bloomberg), 퀄컴(Qualcomm) 등 대부분 미국의 유명한 대기업이다. 사실 이건 놀라운 일이다. 미국에 유학 와서 학위를 졸업하더라고 여러 신분 문제와 영어 문제로 외국인이 취업하는 것은 5% 내외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도 미국 현지 취업이 힘들어서 포닥을 전전하면서 몇 년동안 기다리는 여러 경우들을 많이 봐온 나로서는 석사 동기들이 미국에 온지 1년 만에 모두 좋은 회사에 취직한 것이 행운이라고 보기는 좀 힘들었다. 이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많은 문이 열려있는 미국의 채용 시장 때문이었다.

그럼 왜 미국에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문이 외국인에게 넓게 열려 있는 것일까?

우선 첫번째 이유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희소가치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직업의 사회적 가치는 희소성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수요는 많은데 생산이 없다면 분명히 대우를 잘 해줄 수밖에 없다. 본인은 지금까지 세 곳의 미국 대학을 경험했다. 첫번째가 대학 때 여름학기 수업을 들으러 왔던 UC Berkeley, 두번째가 어학 연수를 왔던 University of Arizona, 그리고 세번째가 석사학위를 했던 예일이다. 학부에 다니는 미국 친구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했을 때 대부분 돌아왔던 대답은 3가지였다. 메디컬 스쿨, 로스쿨, 그리고 비즈니스 스쿨. 지역마다 학교마다 차이는 어느 정도 존재하겠지만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평생 업으로 삼고 싶어하는 학생은 점점 줄고 있고 그 자리는 외국인들이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학을 와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 학생의 수는 제한이 있는데 반해, 미국에서 IT 기업들은 계속 번성하고 있다. 또한 엔지니어링은 진입 장벽이 높아서 누구나 하고 싶다고 뛰어 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공부를 하면서 준비해야 되고, 실제 일할 때에는 어렵고 힘든 일을 감당할 의지가 있는 열정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가 좋은 두번째 이유는 법적인 이유 때문이다. 미국 기업에서 능력 있는 많은 외국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고용하지만 그들에 대한 대우는 미국인과 차별하면 안되도록 법적으로 못 박혀있다. 형식적인 법이 아니라 고용된 외국인과 미국인 사이에 연봉, 처우, 환경 등 어느 면에서 차별이 있다면 미국에서 가장 큰 문제로 인식되는 차별(discrimination) 문제로 인식되어 엄청난 벌금을 물 수 있는 소송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미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금전적인 면에서 그리고 처우의 측면에서 많은 불이익을 받는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는 합법적으로 일할 권리가 있으면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받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사실 이 문제는 외국인을 대우해주기 보다는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방안에서 나온 법이다. 외국인을 미국 기업에서 자국민보다 싼 임금으로 고용하게 되면 고용시장에 혼란이 생겨 전체 미국인들의 임금이 낮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 미국 사람과 상대적으로 비슷한 임금을 주는 업체에 한해서 외국 사람 고용을 허락해주는 것이다. 같은 능력이라면 가능하면 미국 사람을 고용하라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셋째, 미국 IT 업계에서의 외국인 개발자에 대한 의존도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매년마다 전산학과를 비롯한 컴퓨터 관련 학과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실제 등록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어 IT업계에서는 염려의 목소리를 내어왔다. 아까 예일의 전산학 석사 프로그램에 미국인 입학생이 없었다고 언급한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실제 IBM과 같은 IT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에서는 대학에 많은 재정적 지원과 인력들을 제공해주면서 IT분야에 더 많은 인력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똑똑한 미국 학생들의 경우 대다수가 의사 또는 변호사가 되거나 월스트리트에서 뱅커로 일하는 것을 희망하면서 자연히 컴퓨터 관련 기술은 대다수의 미국 학생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져 버렸다. 현재 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많은 IT기업들이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어 그들의 사업 기반이 커질수록 더 많은 고급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인력시장의 범위를 미국인들로만 구성하면 수요를 감당하기에 너무나 적지만 전세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면 고용할 수 있는 엔지니어의 폭이 많이 넓어지게 된다. 또 만일 그렇게 외국 출신의 엔지니어들을 고용하면 미국인과 같은 대우를 해주어야 되므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실력있는 외국의 엔지니어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마이크로소프트, IBM, 인텔과 같은 메이저 미국 IT기업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출신의 엔지니어들은 영어는 좀 부족해도 기술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회사 생활에도 만족하게 되므로 미국 내 IT인재가 줄어갈수록 더 많은 외국 인재들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맺으며…

20살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갈 꿈을 품은지 11년 만에 결국 미국으로 유학을 올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중간에 전공을 바꿔보기도 하고 다른 분야로 진출을 꾀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바라는 라이프 스타일대로 일과 가정 생활의 균형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 해외 진출을 꿈꾸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미국으로 유학와서 너무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수없이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정보를 찾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영어가 서툰 나로서는 가장 두려운 전화 통화도 시도해야 되었다. 1년동안 맨땅에 헤딩하면서 열심히 미국 생활을 배워가고 새로운 전공도 배워가서 미국 현지 취업까지 도전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지금은 텍사스에서 내가 꿈꿨던 라이프 스타일대로 살고 있다.

어제는 델에서 서버 엔지니어들이 모두 모여서 전체 회의를 하고 왔다. 수백명의 사람이 있는데 5년, 10년, 15년, 20년, 25년을 근무한 엔지니어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감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25년… 내가 한국에서 25년을 엔지니어로 한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백발이 희끗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엔지니어도 일하고 있는 여기 미국이 엔지니어들이 일하기에는 가장 좋은 환경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와 인생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면 끊임없이 다른 기회들을 도전해보라고 조언을 드리고 싶다. 그것이 해외 취업이 되든, 다른 직종으로의 이직이 되든,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되든 자기에게 맞는 적성을 찾아서 끊임없이 도전해 볼 때 좀 더 나은 삶을 꿈꾸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본인도 20대의 긴 시간 동안을 ‘이건 아닌데, 이것도 아닌데..’ 하면서 고민하다가 이제서야 본인이 바라는 것을 찾은 것 같다.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찾았으니 나에게는 참 의미 있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든, 호주든, 그리고 일본이든 점점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IT엔지니어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외부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정말 좁은 사회이다. 작은 땅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울 지역에 집중되어 끊임없이 경쟁하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서 해외를 보게 된다면 능력있는 IT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는 다국적 기업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하게 되고 이 나라 문화를 새로 배우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체득했던 많은 것들을 리셋시켜 버리고 다시 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힘든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고,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인생에 한번 다른 모험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어라는 장애물이 있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기술과 실력으로 말하지 않는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열심히 찾아보고 도전해보게 된다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해외 취업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다음 호에서는 미국에서 직장을 찾을 때 명심해야 될 사항과 어떤 과정을 거쳐야지 미국 현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

Reference

[1]: “The 10 Best Jobs of 2012”, CareerCast.com

http://www.careercast.com/jobs-rated/10-best-jobs-2012

[2]: “The World’s Hardest-Working Countries”, Forbes

http://www.forbes.com/2008/05/21/labor-market-workforce-lead-citizen-cx_po_0521countries.html

[3]: “OECD.StatExtracts Average annual hours actually worked per worker”

http://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ANH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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