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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6 03:05
"열다섯, 소년은 생애 첫 영화를 찍었다. 16㎜ 카메라의 직사각형 프레임은 인생사 단맛 쓴맛 모두를 성실히 담아냈다. 영상이란, 살면서 무수히 흔들리는(映) 존재인 인간의 어떤 순간(像)을 담아내는 것. 한 인간에 대한 관찰 일지를 완성했을 때 나는 성씨(氏) 한 글자, 역할 한 글자를 따 '오 감독'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 이력서를 취업난 심각한 2017년에 그대로 낸다면 나는 분명 탈락할 것이다. 바늘구멍을 뚫고 입사한 근래 후배들 스타일에 맞춰 내 이력서를 2017년 판(版)으로 고쳐봤다.
"열다섯, 소년은 생애 첫 영화 '인생술집'을 찍었다. 16㎜ 카메라로 줌인(zoom-in) 줌아웃(zoom-out) 기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인간의 섬세한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 데 주력했다. 영상이란, 살면서 무수히 흔들리는(映) 존재인 인간의 어떤 순간(像)을 담아내는 것. PD를 업(業)으로 삼겠다 다짐했던 2015년 겨울부터 '오 감독'이라는 이름의 블로그에 영상 200개를 올렸고, 이 중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취업 준비생의 비애를 다룬 'N포 세대의 절규'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리면서 '블로그 이웃'이 1만명까지 늘어났다. 졸업 학기였던 2010년엔 유튜브·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동영상의 '좋아요' 수가 2만명을 돌파하면서 높은 광고비를 수주할 수 있는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력서를 다시 써보니 '나는 무얼 연출하려 하는가' 소명 의식이 뚜렷해졌다. '꿈'의 사전적 정의는 ①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②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理想)이다. 자면서 꾸는 '꿈'은 보통 추상적인 잔상으로 남지만, 미래를 향한 '꿈'은 구체적이고 선명할수록 설득력을 가진다. 이력서 한 장으로 제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 꿈꾸듯 제 꿈을 설명하는 건 독(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