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씨(오른쪽)는 어학 연수를 대신한 미국 인턴을 징검다리 삼아 풀무원 미국 법인에 취업했다. | ||
대학생 10명 가운데 8명 이상(86%)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외 취업을 하겠다’고 한다. 다양한 문화 체험(40%)과 높은 연봉(28%)을 기대해서다(한국산업인력공단, 대학생 801명 조사 결과). 해외 취업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해외 취업 알선 사업을 시작한 2004년(571명)에 비해 지난해 해외 취업자 수가 1446명으로 늘었다(표 참조). 3년 만에 세 배 이상 증가했다. 민간 알선업체를 거치거나 개인 노력으로 취업한 경우까지 합하면 실제 해외 취업자 수는 훨씬 많다.
그러나 해외 취업은 대다수 구직자에게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언어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고 길잡이도 많지 않다. 세계 각국에서 일자리를 잡아 해외 취업에 성공한 이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지렛대가 된 미국에서의 ‘막노동’
미국 풀무원 법인 총무팀에 근무하는 김현주씨(27)는 ‘해외에서 일하겠다’는 대학 시절 꿈을 이뤘다. 해외 취업을 위해 그녀는 나름대로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휴학계를 내고, 해외 인턴 알선업체의 도움을 받아 미국 인턴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영어도 잘 못하고 기술도 없던 그녀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그야말로 ‘막일’이었다. 미국 동부에 있는 한 스키 리조트 레스토랑에서 시간당 8달러50센트를 받고 6개월 동안 일했다. 숙식은 두 사람이 함께 쓰는 기숙사에서 해결했다. 김현주씨는 “일은 고단했지만 영어도 늘고, 미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싼 돈 들여 어학연수한 것보다 훨씬 나았다”라고 말했다. 비용만 놓고 봐도 손해는 아니었다. 알선업체 수수료와 현지 생활비까지 400만원가량 들었는데, 레스토랑 시급으로 번 돈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
인턴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 김현주씨는 미국 부사장에게 ‘남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다행히 직원으로 남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6주일 동안 그녀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본 덕이었다. 그녀는 현지에서 바로 비자를 받아 자연스럽게 풀무원 미국 법인 정직원이 되었다. 그녀는 “객지 생활이 다 그렇듯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돈 벌며 해외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회사 근처 야간대학에 등록해 짬짬이 공부를 계속하는 그녀는 미국 최고의 비즈니스 전문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칠곡 ‘촌놈’ 닛산 자동차 엔지니어가 되다
경북 칠곡이 고향인 장상규씨(30)는 우연한 기회에 해외 취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과 교수 추천을 받아 일본 업체에 지원했는데, 일본 취업에 대비해 아무런 준비도 않던 그에게는 무리였다. 첫 번째 고배를 든 뒤 그는 작심을 하고 상경했다. 한국에서 웬만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일본에 취업하는 것이 보수나 경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일본 취업을 알선하는 학원에 등록하고, 고시원에 짐을 풀었다. 하루 8시간씩 4개월 동안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과 일본어 교육을 받았다. 다행히 교육이 끝날 무렵 트랜스코스모스라는 일본 IT 기업에 채용됐다. 이 회사는 IT 인력을 채용해 일본 자동차 기업이나 IT 기업에 파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곧바로 실무에 투입된 것은 아니다. 채용된 뒤에도 1년 가까이 실무 연수를 받은 후 본격적인 자동차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장씨는 닛산 협력업체에 파견되어 2008년 한국에서 출시될 SUV 자동차를 설계했다.
장상규씨(앞)는 일본 취업 알선 기관을 통해 IT기술을 익힌 뒤 일본 자동차 회사에 취업했다. | ||
직행할 수 없다면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정숙천씨(37)는 대학에서 항공운항학을 전공했지만 승무원은 꿈도 꾸지 못했다. 국내 항공사는 이른바 명문대라도 나와야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만큼 문이 좁았다. 그녀는 항공승무원을 포기한 뒤 대전 엑스포 도우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도우미로 열심히 일한 덕에 그녀는 한국지역난방공사에 특채되기도 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홍보실과 비서실을 거치며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안주하기에는 그녀의 가슴이 너무 뜨거웠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견디다 못해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고, 급기야 필리핀 여행 중에 스쿠버다이빙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닷새 예정이
ⓒ시사IN 한향란 행사 도우미·스쿠버다이빙 강사를 거쳐
아랍에미리트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정숙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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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한국에 잠시 귀국해 중동의 한 항공사에서 항공승무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 전에 접었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도시에 생긴 신규 항공사, 왕족이 소유한 회사라 직원에게 큰 아파트를 제공하고 회사 버스로 출퇴근한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승무원 전문 학원에 등록해 시험 요령을 익히고 원서를 접수했다. 필리핀과 호주에서 일하며 닦은 영어 실력과 세계인을 상대로 한 서비스 경험이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환상은 금세 깨졌다. ‘아침은 파리에서, 저녁은 뉴욕에서’라는 표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을 전쟁처럼 치러내야 했다. 시커먼 아랍인 남자 승객이 ‘기내식을 당장 치우라’고 소리치다 쟁반을 바닥에 내동댕이쳐도 왕처럼 떠받들어야 했다. 수시로 바뀌는 시차 적응이 힘들어 수면제를 먹어야 잠 드는 날이 많고, 기내식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배 속에 가스가 차 방귀 나오는 약을 휴대해야 하는 것이 승무원의 삶이었다. 너무 힘들어 사직서를 냈다가 돌려 받기도 했다.
ⓒ시사IN 안희태 용접 기술자 김수현씨는 산업인력공단
소개로 호주 업체에 지원해 합격했다. 용접 기술을 박대하는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나으리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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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부터 준비한 중국 취업
김형철씨(27)는 고3 때부터 해외로 나가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위해 대학에서 국제통상과 중문학을 함께 공부했다. 해외로 나가려면 어학이 필수기 때문에 교환학생 공고가 날 때마다 지원했다. 김씨는 다행히 두 차례나 중국 교환학생에 선발돼 중국 현지에서 중국어를 익힐 기회를 잡았다. 언어를 배운 뒤 김씨는 해외 인턴십에 도전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해외 인턴십에 지원한 결과 중국에 나가 있는 한국 IT 기업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대기업 휴대전화 단말기 협력업체였다.
그 회사 임원은 중국어도 잘하고, 일 욕심도 많은 김씨를 단박에 알아보았고, 인턴 3개월 만에 김씨를 정식 채용했다. 처음에는 무역과 생산 관리 일을 했지만, 김씨는 일을 좀더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개발부서를 지원했다. 회사는 6개월 만에 그에게 개발팀장을 맡겼다. 현재 그의 연봉은 2500만원 수준(성과급 제외)이어서 많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그는 돈보다 더 큰 자산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 일반 중견 기업에서는 말단부터 팀장까지 가려면 최소 7~8년이 걸린다. 그러나 여기서는 초기부터 한 부서의 팀장을 맡아 더욱 폭넓고 광범위하게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이 너무 많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괴로울 때도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직원들은 으레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12까지 일한다. 주말도 없다. 그래도 김씨는 후회하지 않는다.
김씨는 “적당히 일하면서 돈 벌 생각으로 중국에 오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지방대 출신이 ‘스펙’이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생스럽더라도 남보다 앞서 일하는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자기의 자산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버티기 어려운 것이 중국 생활이라고 덧붙였다. 김씨와 함께 중국에 왔던 인턴 대학생이 60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중국에 남아 일하고 있는 이는 40명뿐이라고 한다. 환상을 갖고 왔다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용접 기술로 호주에 도전하다
한국폴리텍Ⅱ대학 산업설비과 김수현씨(27)는 다음 달이면 호주로 간다. 산업인력공단 소개로 호주 채용업체 ADD에 채용돼 호주 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게 되었다. 김씨는 원래 기계를 만지는 일을 했다. 그러나 보수가 적고 일자리도 많지 않아 1년 과정 직업 전문학교인 한국폴리텍대학 산업설비과에 지원했다. 그는 이곳에서 용접을 처음 배웠지만 1년도 안 돼 자격증을 땄다. 졸업을 앞두고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호주에서 용접공을 채용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용접 일이 3D 업종으로 천대받지만 선진국에 가면 더 많은 보수에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지원했다. 비록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2년 계약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영어 공부를 더 해 일정한 어학 능력을 갖추면 정식 취업비자를 받아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고 한다. 호주에 간 한국 용접공은 시간당 25~28 호주 달러를 받는다. 김수현씨는 “보수나 경력 측면에서 보면 한국에서 웬만한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것보다 낫다. 모든 것이 낯선 외국이라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