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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란(59·사진) 유엔개발계획(UNDP) 양성평등 국장의 말이다. 유엔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의 대모(代母) 격인 그가 오늘의 자리까지 오른 것도 모험정신 덕이었다. 1979년 연구보조로 시작해 30년 가까이 유엔과 함께 해온 한씨를 만났다. 15일 외교통상부와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이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한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에서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모험정신을 펼친 것은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을 때부터다. 체념이나 실망 대신 미국으로 가 더 높은 목표를 세우기로 했다.
“집에선 난리가 났죠. 그래도 전 막무가내였어요.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었거든요.” 어렵사리 부모를 설득한 뒤 뉴욕행 편도 비행기표를 끊었다. “뾰족하게 뭘 하겠다고 정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저지른 거죠(웃음).” 지금은 영어가 더 편한 나머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답변할 정도지만 당시엔 영어도 못했다고 한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도착한 뉴욕에서 헌터 칼리지에 입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이다 보니 자연스레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기회를 엿보다 79년 연구보조직원 모집공고를 보고 응시, 합격했다. 뉴욕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학위(MBA)를 따는 등 자기계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85년 유엔개발계획에 정식 채용됐다. 이후 아프리카 잠비아·마다가스카르를 비롯, 전세계를 누비며 일했다.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건 세계 벽지에서 일해야 하는 것을 의미해요. 항상 이동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죠. 하지만 이걸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가족들의 지원도 한 몫 했다. “건축가인 남편이나 두 아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어요. 시어머니도 아프리카 근무지로 갈 때마다 격려해주었죠.”
한씨는 동양인에다 여성이라는 점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만들었다. “내가 다르다는 점을 오히려 나를 부각시키는 도구로 이용했죠. 실제로 많은 덕을 봤다고 생각해요. 부드러운 이미지로 친화력도 키우고, 또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으로 일도 열심히 했죠.”
그가 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루마니아 주재 유엔대사로 일했던 시기다. “대통령 및 유력 정치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100만 달러 규모의 유엔 관련 사업도 1000만 달러 규모로 만들고, 루마니아의 소수민족 문제 해결 및 유럽연합 가입 등에도 힘썼죠.”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에는 루마니아 대통령으로부터 그랜드 크로스 훈장도 받았다. 외국인에게 주는 최상급의 훈장이었다고 한다.
2007년 뉴욕으로 돌아와 현직을 맡았다. 유엔기구에서 남성과 여성의 고용 비율을 50 대 50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주된 업무로, 보고서 작성 등에 항상 바쁘다. “365일 24시간 일하는 셈이에요. 그런데도 너무 행복해요. 제 일을 너무나 사랑하거든요. 앞으로 한국인 후배들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면 더 바랄 게 없네요.”
글·사진=전수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