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성공 수기
[캐나다] 형틀목수-08년수기 우수작
작성자 : 김진열    등록일 : 2008-11-19    조회수 : 474
마흔 여섯의 객기

갈수록 건설경기는 후퇴하고 교육비를 비롯한 생활비는 자고나면 치솟는데 임금은
IMF이후 계속 제자리 걸음이다. 큰아이 대학 등록금도 힘에 부치는데 작은 아이도
고등학생이 된다. 겨울에는 추워서 공사중단. 여름에는 장마 때문에 공사 중단. 불규칙한
수입에 아내타박 질리도록 들었다.
우연히 산업인력관리공단 홈페이지 월드 잡에 들어갔다가 캐나다 형틀목공 모집 공고를
접하고, 바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더 이상 국내에서는 비전이 없는것 같았다. 안정된 생활과 보다나은 삶의 질을 향하여 더 나이 먹고 늙기 전에 멋지게 한번 도전해 보자.
처음에는 BC주 벤쿠버에 있는 K건설사에 가는걸로 일이 진행되었다. 서류 심사, 실기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하고 오리엔테이션 까지 마쳤다. 1년간 월급에서 매달 얼마를 떼어
에이전트사에 취업 수수료를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달갑지 않지만, 기왕 마음 먹은일
한번 가서 부딪혀 보리라 마음 먹었다. 당장 출국할 것 같았던 일이 몇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몇일뒤, BC주와 알버타주 쪽에서 에이전트 사들의 무리한 수수료 문제와 인력송출
관계로 모 텔레비전 고발 프로그램에 보도되고, 현지에서 계약조건대로 직장을 얻지못한
근로자들이 민원을 제기하는등 국제적 말썽이 생겼다.
그러면 그렇지... ... 그렇게 쉽게 해외 취업이 될 리가 있겠는가. 우리나라 회사의 해외
현장도 아니고, 현지의 캐나다 회사인데... 그렇게 벤쿠버행 꿈을 접고 2007년 한해가
저물어 갈무렵, 느닷없이 산업 인력 관리공단에서 전화가 왔다. 알버타주 캘거리로 갈
의향이 있느냐고.. 자세한건 이메일을 참조하란다. 처음에 추진했던 벤쿠버와는 완전히 다른 조건이다. 현지 에이전트사에 수수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고, 한달안에 당장 출국날짜가
잡힐거라는 소식이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영어 공부라도 열심히 해둘껄..

우열곡절 끝에 영어 테스트도 통과했다. 이글을 쓰면서 공단의 윤지원 대리, 에이전트
사의 허준 실장. 두 분의 헌신적 도움이 새삼 떠오른다.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요일에도 출근하여 우리를 도와주셨던걸로 기억된다.
회사측에서 요구하는 각종 서류를 준비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20년 가까이 목수로 일했는데 경력증명서 한 장 뗄 수 있는 기관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건설 기능공들은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인가.
엔지니어들은 어떤 기관에서 경력을 관리하는걸로 알고 있는데... 목공, 철근, 철근공,
조적공, 미장공, 배관공, 전기공 등등 건설에 꼭 필요한 기능공들은 너무 허술하게 대우하고 관리하는것 같아 섭섭하고 안타까웠다.
2008년 1월,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앞두고 9명의 형틀 목공이 멀리 북미 캐나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십여시간의 비행 끝에 낯설고 먼 밴쿠버 도착. 입국심사가 꽤나
까다롭다. 일행 중 가장 나중 순서인 두 사람을 붙잡고 이민국 지원이 태클을 건다.
유일하게 부인과 아이까지 동반 출국한 Y씨와 우리처럼 혼자 온 S씨를 붙잡고 시비를
건다. 마치 한국으로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투로 실랑이를 벌이기를 두 시간. 우리는
초조하게 로비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공항경찰이 마약탐지견을 데리고 나와
가방마다 냄새를 맡게 한다. 아 뭐야? ...
다들 로비를 벗어나 캘거리 쪽 게이트로 이동. Y씨와 S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30여분이 지나자, Y씨와 S씨는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로비에 들어온다. 여직원하나가
별 이유 없이 까탈스럽게 3시간이나 붙잡고 늘어졌었던 것이다.
캘거리 행 비행기는 폭설로 인하여 4시간이나 연착되었다. 밤 9시 30분, 칠흑 같은
어둠속에 캘거리공항 도착. 마중 나온 회사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향한다.
허걱! 영하 27도에 몰아치는 눈보라.
“아, 이거 잘못 왔구나.”
누군가 탄식을 한다. 살인적인 추위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잘못 온 게 아닐까?
그렇게 시작된 캘거리 생활. 어저께 온 것 같은데 벌써 또 다른 겨울이 앞에 와있다.
추위에 떨고 낯선 환경에 떨며 우리들은 여기까지 왔다. 벌써 7개월.. 넘어야할 험난한
산들은 동방의 작은 나라 사람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알버타주 대한민국의 8배나 되는 광할한 땅에 인구 겨우 3백만. 석유를 비롯한 풍부한
지하자원.무한한 잠재력의 땅. 원시적 초원을 간직한 록키산 서쪽에 인구 백만. 알버타
제 1의 도시 캘거리. 대지에서 솟은 태양이 대지로 진다.
해발 평균 1100m의 고지대의 캘거리. 쉽게 피로 하고 지친다.
30분의 점심시간과 오전 15분, 오후 15분. 간식시간은 너무나 짧게 지나간다. 여기서는
학교,관공서,대기업 모두가 똑같은걸로 알고 있다.
우리는 주 40시간 일하는 것으로 고용 계약을 맺었다. 그 외의 근무 시간은 오버 타임을 적용 받는다. 물론, 기본 시간의 1.5배의 임금이 계산된다.
우리 1기들은 항상 언어문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잘 듣지 못하고, 잘 말하지
못하니 장애자나 다름없다. 통역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별로 없다. 작업오더를 받거나, 기술적인 언어는 거의 상황이해력이나 바디 랭귀지로 대처한다. 이 언어장벽을 넘는 것이 우리의 최대 과제이다.
10kg이상의 안전장비를 몸에 두르고 하루종일 일하고 나면, 저녁엔 녹초가 된다. 철저한 안전규정 때문에 함부로 벗어놓지도 못한다. 적발되면 무조건 해고다.
여기서도 안전문제를 가장 중요시 한다. 거의 매일 안전작업에 대한 미팅을 하고, 각자
사인을 한다. 모든 교육과 미팅, 간단한 전달 사항에도 꼭 사인을 해야한다. 미팅이나
교육을 했다는 자료를 남기는것 같다.
처음 입사하면 경력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무조건 회사트레이닝 센터에서 1주간의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다. 전기톱 안전사용법하나를 무려 8시간이나 교육할 정도로 철저한
교육 시스템이다. 이런 제도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본받아야 될것 같다. 왜 이 회사는
103년 동안이나 건제한지, 이 짧은 역사의 나라가 왜 선진국인지 트레이닝을 받으며 조금
알것 같았다.
2기생 가운데 성실한 친구 하나가 안전규정 위반으로 해고 당했다. 아무리 일잘하고
성실해도 원칙앞에 예외가 없다. 유럽에서 들어온 한사람과 LA에서 온 사람은 작업 도중 의견 충돌로 싸워서 해고 되었고, 또 다른 현장에서는 한국에서 들어온 5명이 작업중 의견 충돌로 집단 해고되었다. 서로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이들의 문화 관점으로 볼때,
그들은 다투고 언성을 높이는 한국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것 같다.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한국적 사고가 앞선다.
어디선가 이민생활은 과거와 단절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정말 그렇다. 여기서는
한국에서의 나를 철저히 잊어야 한다. 하루를 살든지, 영주권을 받아 정착하든지, 계약기간 만료 후 귀국을 하든지 여하간에 이들의 문화와 관습을 몸에 익혀야 할것이다.
이곳 알버타는 모든 분야에서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2010년 까지 10만명의 이민을
받아야 주 경제가 원할히 성장할것이라는 전망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다. 따라서 한국에서 많은 기능인력들이 들어올 것이라 예측된다. 이곳 정부에서는 기술과 더불어 언어능력을
요구한다. 철저한 준비를해서 많은 우리나라 인력이 들어와, 우리 한국인들이 이 사회의
주도적 세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교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한국보다 불편한것 같아도, 살아갈수록 선진국이다라는것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곳 캘거리는 물가가 너무 비싼게 흠이다. 여기서도 왠만한 공산품은 거의가 중국제다. 주택 렌트비, 생활 필수품 등 물가 지수가 동경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 속에서도 우리는 중산층정도의 생활 수준이 된다고 본다. 수입에서 등급으로 말한다면 B정도의 등급이다.
한국에서 우리직업으론 꿈의 레벨이다.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출근길에 나서는 사람들. 추운지방이라 그런지 남녀노소
걸음거리가 굉장히 빠르다. 마치 경보 선수마냥.
이민 정책으로 인력난해소와 경제성장을 이루므로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산다. 철저한
주 5일 근무제, 엄청난 세금. 우리도 거의 35%를 세금으로 뜯긴다(?) 느려터진 인터넷,
열악한 의료서비스, 어눌한 행정 서비스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듯 하면서도 잘 굴러가는
사회 시스템. 철저한 일처리. 여기는 분명 선진국이다.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 어떠한 원칙을 세우면 철저히 지켜지는 사회. 그 어떤 것 도 원칙 앞에는 예외가 없다.
마흔 중반에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냥 현실에 만족하며 살지.. 왜 그 먼 나라까지 가서 고생하느냐는 친구들의 만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어차피 타향살이는 서러운 것. 꿈을 이루리라. 시대를 앞선 형틀 목공으로..
103년의 전통, 캐나다 전체 도급순위 3위. 우리가 일하는 회사 PCL. 앨버타 주에서 가장 많은 현장을 갖고 있다.
보다 많은 우리나라 기능 인력들이 캐나다로 진출하길 바라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를 지켜보는 많은 눈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학연, 지연, 혈연이 필요 하지 않고, 화이트 컬러 보다는 기술이 있는 블루컬러가 훨씬 대우받는다. 또한,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할지라도 직업에 대한 차별이 없다. 젊은
기능 인력들 에게 여기 캐나다에서 꿈을 펼쳐보길 권하고 싶다. 글로벌 시대에 국내의 좁은 울타리에서 나와 세계무대의 꿈을..
사교육 열풍, 입시지옥에서 내 딸은 탈출했다 나를 따라서.
내가 들어온 3개월후,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딸아이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우리처럼 워크 포맷을 받은 사람들은 영주권자와 같은대우를 받는다. 따라서, 세금도 똑같이 내고, 혜택도 비슷하게 받는다. 고등학교까지 학비가 무료이다. 한국에서 유학보내려면 목수일하는 우리로선 상상도 못하리라.
처음에는 나도 딸도 망설였는데, 지금은 만족한다. 교육환경은 정말 만족이다. 세계곧곧에서 들어오는 이민자 자녀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 있다. 아이들로서는 세계여러나라 친구들을 사귈수 있고, 영어도 확실히 배울수 있으니 정말 좋은 기회인것 같다. 우리 1,2기 중에, 가족인는 사람들은 거의다 이곳으로 들어온것 같다. 내 아내는 큰아이 군문제 때문에 한국에 잔류 하고 있다. 언제가는 합류할 것이다. 여기서 계속 일할수 있으면 좋으련만. 처음 몇 달은 2년만 일하다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영주 하고 싶다.
인터넷으로 고국 뉴스를 볼때마다 부정적인 소식이 너무 많아 가슴아프다. 물가상승, 유가폭등, 각종 물가 상승, 정치력 부제, 불안한 환률, 주식.. 갈수록 늘어나는 청년 실업.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기술배워서 해외로 취업하라. 당신들의 몸에 장인의 피가 흐른다라고. 손재주 좋은 젊은 인재들이 백만이나 실업자라니.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는것도 괜찮을것 같다.
여기서의 나와 내 딸아이의 살아가는 모습이 TV 프로그램에도 소개 되었다. 내가 출연한 TV를 보고, 캐나다 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고 서투른 준비로 해외취업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스럽다. 철저한 준비없인 어디서든 버티기 힘들것이다. 여기는 목돈 버는 황금어장도 아니고 꿈이 이루어지는 약속의 땅도 아니다.
형틀목공으로 왔다면 형틀기술이 있어야 되며, 5년이상 경력자로 왔다면 그정도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는 3개월 이상 못버티고, 어떤식으로든 회사에서 퇴출될것이다.
서양 목수들은 덩치 크고 느리며 일솜씨가 섬세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생각은 3일만에 깨졌다. 캐네디언 목수도 일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잘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들에게 뒤쳐질 수도 있다. 그들보다 몇불더 받는 우리로서는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자신감있는 기술력과 어느정도 영어실력을 꼭 갖출것을 충고하고
싶다.
우리 산업인력공단 1,2기를 포함하여 캐나다 현지 교민, 미국에서 온 한인들 합해서
30여 명의 한국인들이 우리현장에 일하고 있었다.
잘 적응하고, 자리를 잡아간다 싶었는데 십여 명 의 동료들이 집단 해고를 당했다. 도대체 이들의 건설 문화, 이들의 인력 관리 시스템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럴 때 는 혼란스럽고
힘들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우리선배들이 신화였다면 우리는 북미 진출의 밀알이고 싶다. 우리는 캐나다, 독일, 멕시코, 중국, 인도 등 세계 각국의 기술자들과 경쟁해야 된다. 그들보다 더 성실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아서 여기서 살아남으리라.
창사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 센트니얼 플러스 45층 빌딩 신축 공사. 끝까지 우리의손
으로 마무리하기를 소망해본다. 지금도 주도적 위치에서 일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장인들의 손으로 이 프로젝트를 완공하고 나면 우리의 위상도 달라지리라. 우리 손으로 이 빌딩을
마무리하는 그날, 울컥 가슴한구석에 눈물조차 솓 는 다면 기꺼이 울어 주리라. 대한민국 형틀목공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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